AI 에이전트가 지워버린 '중간 과정'의 실체
최근 AI 에이전트의 도입 범위는 단순한 보고서 편집이나 데이터 수집 같은 반복 작업을 넘어섰다. 이제는 완전한 사업 전략 수립, 전체 마케팅 캠페인 기획, 조직 부문 전략 생성까지 AI가 직접 수행하는 단계로 확대되고 있다. 리더들이 더 많은 생산량을 요구하면서, 이메일 한 통부터 기업의 핵심 전략까지 즉시 생성해내는 AI 활용 압박은 더욱 거세지는 추세다.
현장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변화는 지식 노동자들이 느끼는 '업무와의 거리감'이다. 과거에는 추상적인 업무라도 사람이 직접 고민하고 슬라이드를 만들며 고객의 답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필요성을 확인했다. 하지만 실행의 대부분을 AI에 맡기면서 인간은 에이전트 군단을 관리하는 감독자 역할로 밀려났다. 결과적으로 업무 효율은 높아졌으나, 정작 노동자는 자신이 만든 결과물에서 소외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고소득 기술 전문가나 조직 지식을 많이 보유한 고위직에게서도 발견된다. 업무 통화 후 뜨개질이나 도예, 그림 같은 아날로그 취미에 몰입하며 '실제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를 드러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휴식의 욕구가 아니라, AI가 대체할 수 없는 직접적인 성취감을 찾으려는 실존적 불안의 발현으로 해석된다.
'결과 우선형' 자동화가 초래할 인재 풀의 붕괴
지식 노동 시장은 현재 '결과 우선형'과 '경험 우선형' 노동자로 나뉘어 AI 도입에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 결과 우선형은 성과와 효율에 집중하며 AI를 장애물을 제거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반면 경험 우선형은 동료와의 협업, 치열한 토론, 공동의 고생과 탐색 과정 자체에서 동기를 얻는다. 이들에게 업무의 '지저분한 중간 과정'은 제거해야 할 비효율이 아니라, 창의성과 직장 생활의 의미를 지탱하는 기반이다.
문제는 기업의 AI 채택 흐름이 철저히 결과 우선형의 관점에서 설계되고 있다는 점이다. AI와 LLM(대규모 언어 모델)을 활용해 협업 없이도 결과물을 낼 수 있는 구조는 일을 '탐색과 학습의 과정'에서 '조립 라인 생산'으로 변질시킨다. 효율성만으로 인재를 유지하기 어려운 경험 우선형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환경은 일을 계속해야 할 토대가 무너지는 일과 같다.
인력 감축의 원인으로 AI를 언급하는 대기업들의 행보는 장기적으로 인재 풀의 회복 탄력성을 낮출 위험이 있다. 과거의 해고 주기에는 다시 고용할 노동자 집단이 존재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워키즘(Workism, 직장에서 성취감과 정체성을 찾는 현상) 자체에 환멸을 느낀 경험 우선형 인재들이 아예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하거나 부업을 전업으로 전환할 경우, 기업이 다시 인력을 보충하려 해도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AI 시대의 인재 유지를 위한 '인간적 영역'의 보존
AI 실무자와 조직 관리자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효율의 역설'이다. 모든 과정을 자동화해 최단 거리로 정답에 도달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이익이지만, 이는 조직을 결속하던 협업 구조를 해체하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창의적 혁신은 지표나 결과보다 일 자체의 흥미와 도전에 동기를 느낄 때 발생한다는 '내재적 동기 원리'를 고려한다면, 무분별한 자동화는 조직의 혁신 동력을 끄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은 모든 업무를 자동화하기보다, 사람이 직접 문제를 풀고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인간 전용 영역'을 의도적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에이전트에게 즉시 답을 요청하는 대신 동료와 통화하며 문제를 논의하는 느린 방식을 수용하고, 탐색과 우회라는 전통적인 작업 방식이 더 인간적인 결과를 만든다는 점을 인정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결국 AI 시대의 경쟁력은 AI를 얼마나 잘 쓰느냐가 아니라, AI가 대체할 수 없는 '직접 경험'과 '관계의 가치'를 어떻게 조직 내에 보존하느냐에 달려 있다. 실무자들은 자신의 업무에서 AI가 걷어낸 '지저분한 과정' 중 무엇이 실제 성장을 만들었는지 분석하고, 이를 대체할 수 없는 협업의 형태로 재설계하는 관찰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