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조용한 방 안의 모니터.

터미널 창에는 ping(네트워크 연결 상태를 확인하는 명령어) 명령어가 입력되어 있고, 응답 시간이 3000ms라는 비현실적인 숫자가 찍힌다.

이 장면 뒤에는 LLM을 네트워크 스택으로 활용하려는 엉뚱하고도 날카로운 실험이 있다.

Claude를 이용한 User Space IP Stack 구현

Anthropic의 Claude를 User Space IP Stack(네트워크 통신 규약을 운영체제 커널 밖의 사용자 영역에서 소프트웨어로 구현한 체계)으로 활용하는 실험이 진행되었다. 실험의 핵심은 네트워크 패킷의 처리 과정을 모두 LLM의 추론 과정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ICMP(인터넷 제어 메시지 프로토콜) 패킷을 16진수 텍스트 형태로 변환해 Claude에게 전달하면, 모델은 이 데이터를 분석해 적절한 응답 패킷의 16진수 값을 생성한다. 시스템은 이 텍스트 응답을 다시 바이너리 패킷으로 변환해 송신하는 루프를 가진다.

개발자가 구축한 파이프라인은 다음과 같은 흐름으로 작동한다. 먼저 Raw Socket(전송 계층의 제약 없이 패킷을 직접 제어하는 소켓)을 통해 패킷을 캡처한다. 이후 해당 패킷을 Claude가 이해할 수 있는 프롬프트에 삽입하여 API로 전송한다. Claude는 전달받은 패킷 헤더의 체크섬(데이터 오류를 검출하기 위한 값)과 식별자를 계산하고, 이에 대응하는 Echo Reply 패킷을 텍스트로 출력한다. 이 모든 과정은 Python 스크립트를 통해 자동화되어 실행된다.

결정론적 처리와 확률적 추론의 충돌

기존의 네트워크 스택은 OS Kernel(운영체제의 핵심 제어부) 수준에서 C나 Rust 같은 언어로 작성되어 하드웨어와 밀접하게 작동하며 마이크로초 단위의 속도를 낸다. 반면 Claude를 거치는 방식은 모든 패킷 처리 과정을 자연어 추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예전에는 CPU가 정해진 명령어 세트에 따라 비트를 밀고 당기며 처리하던 작업이, 이제는 모델이 프로토콜 명세서를 기억해 내어 다음 토큰을 예측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는 이를 두고 네트워크 프로토콜이라는 엄격한 규칙을 LLM이 이해하고 재현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하지만 실제 응답 속도는 처참한 수준이다. 일반적인 로컬 네트워크 핑이 1ms 미만인 것에 비해, Claude를 거친 핑은 API 호출 지연과 모델 추론 시간이 더해져 2초에서 5초 사이의 지연 시간을 기록했다. 특히 패킷의 단 한 비트만 잘못 생성해도 체크섬 오류로 인해 패킷이 드롭되는 상황이 발생하며, 이는 결정론적인 네트워크 세계와 확률적인 LLM 세계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개발자가 바로 체감하는 변화는 LLM이 단순한 챗봇을 넘어 특정 시스템의 로직 자체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복잡한 프로토콜 명세서를 코드로 일일이 구현하지 않고도 모델에게 명세를 학습시켜 프로토타입을 빠르게 검증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커뮤니티의 일부 개발자들은 이를 통해 향후 AI가 네트워크 최적화나 새로운 프로토콜 설계 단계에서 시뮬레이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계산의 영역이었던 네트워크 통신이 추론의 영역으로 옮겨갈 때 발생하는 지연 시간은 LLM이 해결해야 할 가장 거대한 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