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스로픽 소송 등에서 제기된 '시장 희석' 논리에 대한 반박

전자프런티어재단(EFF)이 최근 '콘코드 뮤직 그룹 대 앤스로픽(Concord Music Group, Inc. v. Anthropic PBC)' 및 '모자이크 LLM 소송(In re Mosaic LLM Litigation)'에서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Amicus Brief)의 핵심은 저작권법의 과도한 해석을 경계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 내 여러 소송에서 저작권자들은 AI 생성물이 쏟아져 나오면 기존 창작 시장이 파괴될 것이라는 이른바 '시장 희석(market dilution)' 이론을 내세우고 있다.

이 이론의 골자는 생성형 AI 도구를 구축하는 행위 자체가 공정 이용(Fair Use)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AI 도구가 결과적으로 기존 저작권자와 경쟁하는 수많은 작품의 확산을 부추기기 때문에, 저작권자가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비침해적 저작물'까지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다. 즉, 300년 된 저작권 원칙을 수정해서라도 AI 시대의 시장 잠식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EFF는 이러한 접근이 저작권법의 헌법적 목적을 정면으로 부정한다고 지적한다. 저작권법은 기본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표현적 저작물의 창작을 촉진하도록 설계되었으며, 타인의 기존 저작물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자유롭게 구축하는 것을 장려한다. 따라서 법이 처벌해야 할 대상은 '저작권 침해'이지, AI를 이용한 '시장 경쟁'이 아니라는 것이 EFF의 주장이다.

기술적 범용성과 저작권법의 역사적 반복

과거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됐던 '저작권 패닉'의 사례들이 이번 논의의 근거로 제시됐다. 1906년 자동 피아노와 축음기가 음악 작곡을 파괴할 것이라는 주장이나, 카메라의 등장이 초상화 작가를 대체할 것이라는 공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달랐다. 카메라는 오히려 초상화 예술의 부활을 이끌었고, 보도사진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더 많은 사람이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1980년대 비디오테이프 녹화기(VTR) 사례 역시 중요한 기준이 된다. 당시 저작권자들은 VTR이 영화 산업을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법원에 호소했으나, 미 대법원은 VTR이 '타임 시프팅(시간 이동 시청)'과 같은 비침해적 용도로 사용될 수 있음을 인정했다. 법원은 새로운 기술에 반응해 저작권법 자체를 다시 쓰는 위험을 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EFF는 대규모 언어 모델(LLM) 역시 VTR과 같은 '범용 도구'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AI는 단순히 가사를 생성하는 것을 넘어 인간이 수행하는 광범위한 작업을 돕는 도구이며, 이를 통해 인간의 창의성이 증폭되는 사례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또한 기술적으로도 모델이 학습하는 데이터의 양이 많아질수록 개별 학습 데이터가 특정 출력물에 미치는 영향은 줄어들기 때문에, AI 모델이 개별 저작권을 침해한 저작물을 생산할 가능성은 낮다는 연구 결과를 덧붙였다.

AI 실무자가 관찰해야 할 법적 판단 기준

한국의 AI 개발사와 기업들이 이번 논쟁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침해'와 '경쟁'의 법적 분리 여부다. 만약 법원이 저작권자의 '시장 희석' 이론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저작권자가 자신의 작품과 경쟁 가능성이 있는 모든 표현 방식에 대해 사실상의 거부권(Veto power)을 갖게 됨을 의미한다. 이는 특정 장르, 스타일, 트로프(Trope)에 대한 광범위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결과로 이어져 AI 모델의 학습 데이터 확보 및 서비스 전개에 심각한 제약이 될 수 있다.

반면, 법원이 EFF의 주장처럼 AI를 범용 도구로 정의하고 공정 이용 원칙을 고수한다면, AI 기업들은 '결과물이 특정 저작물을 직접적으로 복제했는가'라는 구체적인 침해 여부에만 집중하면 된다. 이는 모델의 성능 향상을 위한 대규모 데이터 학습의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핵심 근거가 된다.

결국 향후 판결의 핵심은 AI가 창작 시장을 '희석'시키는 행위를 저작권 침해로 볼 것인지, 아니면 기술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경쟁'으로 볼 것인지에 달려 있다. 실무자들은 단순히 벤치마크 성능을 높이는 것보다, 모델의 출력물이 개별 학습 데이터의 특성을 얼마나 희석시키는지, 그리고 인간의 창의성을 어떻게 보조하는지에 대한 논리를 정교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