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에서 확인된 핵심 사실

미국이 고성능 AI 칩의 중국 유입을 막기 위해 촘촘한 그물을 짠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정작 핵심 도구인 무역 블랙리스트(Entity List, 미국산 제품·소프트웨어·기술 수출 규제 제도)의 신규 등재는 작년 10월 이후 멈췄다. 10년여 만에 기록한 최장 공백이다.

Entity List는 미국산 제품과 소프트웨어, 그리고 핵심 기술의 대중 수출을 사실상 차단하는 도구로 작동한다. 이 명단에 등재된 기업은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라이선스를 취득해야만 거래가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신청이 거부되어 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최근 신규 등재 작업이 중단된 상태가 지속되면서, 이러한 규제망을 피한 미국 기술이 적성국으로 유입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 등재 대상으로 선정되었으나 보류 중인 기업들의 면면은 구체적이다. 폴란드에서 회수된 러시아 드론의 부품을 공급한 업체가 포함되었으며, 중국 대학에 제한 대상 Nvidia 칩을 판매한 수십 개 업체 역시 명단에 올랐다. 여기에 중국의 군용 드론과 로봇개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기업들까지 잠재적 대상으로 선정되어 규제 적용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 정부가 DeepSeek와 CXMT를 포함한 100개

국가 안보를 이유로 내린 행정 결정이 실제 집행으로 이어지기까지의 공백은 시장에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든다. 미국 정부는 딥시크(DeepSeek)와 CXMT를 포함한 100개 이상의 중국 기업을 무역 블랙리스트인 엔티티 리스트(Entity List, 고성능 AI 칩의 유입을 차단하는 무역 제재 명단)에 올리는 작업을 보류하고 있다. 이 기업들은 이미 작년 부처 합동 위원회에서 등재 승인을 마친 상태였으나, 최종 권한을 가진 미국 상무부가 아직 공식 게재를 하지 않았다. 베이징과의 긴장 고조를 피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가 배경으로 작용하며 행정 절차가 멈춘 상태다.

중국 최대 메모리 칩 제조사인 CXMT(ChangXin Memory Technologies)의 사례는 이러한 규제 지체 현상을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CXMT는 바이든 행정부 당시 이미 미국 국방부에 의해 중국 군수 기업으로 지정된 전력이 있다. 미국 상무부 또한 1년 이상 전부터 이 기업을 엔티티 리스트에 등재하는 방안을 면밀히 검토해 왔다. 국방부의 군수 기업 지정과 상무부의 장기 검토라는 명확한 행정적 근거가 모두 확보되었음에도 실제 무역 제재 명단 등재라는 최종 단계로는 진입하지 못했다.

국가 안보 위험으로 분류된 100개 이상의 기업이 행정부의 외교적 기조에 따라 제재 명단 등재가 유예되는 상황이다. 부처 합동 위원회의 승인이라는 절차적 요건을 충족했음에도 상무부의 공식 게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규제 대상 기업들은 여전히 제재의 영향권 밖에 놓여 있다.

확인해야 할 핵심 지점

미국산 AI 모델을 쓰는 것이 단순한 서비스 이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고성능 모델의 역량을 불법으로 추출해 자국 기술로 옮기려는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작년 DeepSeek(딥시크, 중국의 AI 연구소)가 중국 군과 정보 작전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동남아시아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미국산 첨단 칩에 불법으로 접근하는 경로를 확보했다. Anthropic(앤스로픽)은 DeepSeek와 다른 중국 AI 연구소 두 곳이 자사 Claude(클로드) AI 플랫폼에서 역량을 불법 추출하려 한 캠페인을 확인해 발표했다. OpenAI 모델 역시 동일한 표적이 됐다. 국가 안보 도구가 기술 유출의 통로로 변질된 사례다.

부처 합동 위원회가 승인한 제재 명단이 실제 집행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첨단 반도체 생산과 AI 모델링 분야의 중국 기업 최소 75개가 무역 블랙리스트(Entity List, 특정 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하는 명단) 등재 예정이었으나, 상무부 산업안보 차관 Jeffrey Kessler(제프리 케슬러)가 이를 회피하고 있다. 2025년 말 이후 미·중 긴장 고조에 대한 우려가 공식 등재를 막는 실질적인 이유다. 위원회의 승인이 있었음에도 상무부가 게재하지 않으면서 기존 규정조차 집행되지 않는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 외 지역에 소재한 중국 기업으로 미국산 칩이 수출되는 규제 허점이 발생하고 있다. 안보 논리가 무역 정책의 현실적 우려에 밀려 작동을 멈춘 결과다.

규제 도구가 정치적 판단에 의해 작동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기술 유입 경로는 더 정교해진다. 미국 정부가 블랙리스트 등재를 보류하는 사이, 중국 기업들은 제3국을 경유하는 우회 수입 방식을 고도화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유령 회사를 활용해 첨단 칩을 확보하고, 공개된 AI 플랫폼의 API를 통해 모델의 핵심 역량을 추출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는 단순한 무역 분쟁을 넘어, 국가 안보를 위한 기술 통제 시스템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무력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미국이 고성능 AI 칩의 유입을 막기 위해 운용하는 엔티티 리스트(Entity List)는 현재 집행 공백이라는 치명적인 틈을 보이고 있다. 딥시크가 동남아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미국산 칩을 확보하고 클로드와 오픈AI 모델의 역량을 추출한 사례는 규제 도구가 행정적 보류에 묶였을 때 기술이 어떻게 적성국으로 흘러가는지 증명한다. 결국 국가안보 시스템의 실효성은 리스트의 명단 숫자가 아니라, 실제 유입 경로를 차단하는 집행 속도에서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