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AI와 같은 생성형 AI의 확산은 단순한 도구 도입을 넘어 노동자의 심리적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2025년 여름, 에픽게임즈의 해고 과정에서 말기 암 환자였던 직원이 생명보험까지 잃게 된 사건이 알려지자 레딧 r/technology 게시판에는 36,687개의 추천과 함께 무력감 섞인 반응이 쏟아졌다. 이는 임금 상실에 대한 분노를 넘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던 '직업적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상실감에 가깝다.

지식 노동자에게 전문성은 자아의 핵심이다. 10년 넘게 통계적 판단력을 길러온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에게 자동화는 수입 감소가 아니라 인격의 일부가 훼손되는 경험이 된다. 최근 AI 커뮤니티에서는 실직 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업무가 무의미해졌다고 느끼는 '예기적 애도'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기술 발전 속도가 인간의 심리적 적응 속도를 앞지르면서, 실무자들은 경제적 위기를 넘어 심리적 위기라는 새로운 국면에 직면했다.

'AI 대체 장애(AIRD)'와 인지 노동자의 정체성 붕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일주일 내내 데이터를 정제하고 대시보드를 구축해도 실제 의사결정에는 영향을 주지 못하는 상태가 반복되자, r/datascience와 r/analytics 커뮤니티에서는 이를 '가짜 생산성(fake productivity)'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지표와 보고서는 생성되지만 조직의 방향을 바꾸는 통찰은 사라졌으며, 기업이 얻은 효율성 뒤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쓸모가 사라졌다는 무력감을 겪는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직군은 현재 상단의 머신러닝(ML) 엔지니어와 하단의 거대언어모델(LLM) 활용 분석가 사이에서 압박받는 분절화(Bifurcation) 현상을 겪고 있다. r/MachineLearning의 논의에 따르면 유럽, 중동, 아프리카(EMEA) 지역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해당 분야에서 가장 임금 수준이 낮은 직함이 됐다. 전문 지식의 가치가 하락하며 기존의 경력 경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이다.

2025년 9월 플로리다 대학교 의과대학의 스테파니 맥나마라(Stephanie McNamara)와 조셉 E. 손튼(Joseph E. Thornton) 교수는 학술지 큐리어스(Cureus)에 'AI 대체 장애(AIRD, Artificial Intelligence Replacement Dysfunction)'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이들은 AI로 인한 직무 대체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이 겪는 불안, 불면증, 우울증, 정체성 혼란, 피해망상, 무가치함 등의 증상 군집을 정의했다. AIRD는 아직 NIH(미국 국립보건원)의 승인을 받은 공식 진단명은 아니지만, 임상 커뮤니티가 AI 시대의 심리적 붕괴를 설명할 구체적인 어휘를 구축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2025년 국제 질적 건강 및 웰빙 연구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Qualitative Studies on Health and Well-being)에 게재된 연구는 AI로 인한 실직을 전문적 정체성과 자율성, 미래 전망의 상실로 분석했다. 연구 참여자들은 이번 변화를 단순한 경력 단절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의가 무너지는 경험으로 진술했다.

큐블러-로스 모델로 본 AI 백래시와 사회적 고립

이러한 심리적 붕괴는 개인의 우울감을 넘어 외부를 향한 공격성과 저항으로 표출된다. 2026년 5월 미국 센트럴 플로리다 대학교(UCF) 졸업식에서는 AI를 다음 산업혁명이라고 칭한 연설자를 향해 학생들이 야유를 보내며 "AI는 쓰레기"라고 외쳤다. 2026년 4월에는 한 남성이 샘 알트먼의 샌프란시스코 자택에 화염병을 투척하고 오픈AI(OpenAI) 본사를 협박해 살인미수 및 연방 폭발물 혐의로 기소됐다. 이는 엘리자베스 큐블러-로스의 5단계 애도 모델 중 '부정과 분노' 단계가 AI 실직 과정에서 재현되는 모습이다.

회사의 AI 도입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도 수치로 확인된다. 라이터(Writer)와 워크플레이스 인텔리전스(Workplace Intelligence)의 조사 결과, 지식 노동자의 29%(Z세대는 44%)가 회사의 AI 전략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고 답했다. 이들은 승인되지 않은 도구를 사용하거나 기밀 데이터를 공개 툴에 입력하고, AI 사용 자체를 거부한다. 이는 기술 도입 속도를 늦춰 생존 시간을 벌려는 큐블러-로스 모델의 '타협' 단계에 해당한다.

기업이 해고를 '전략적 피벗'이나 '효율화'라는 경영 용어로 포장하면서 노동자의 슬픔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박탈된 슬픔(Disenfranchised grief)'이 된다. 전문직 종사자에게 숙련도는 정체성 그 자체지만, 기업은 이를 단순한 비용 절감 대상으로 취급한다. 직업의 소멸을 애도할 사회적 허용이 없는 상태에서 노동자의 고통은 불안과 공황, 극단적인 분노의 형태로 표출된다.

과거 산업혁명이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된 것과 달리 AI 자동화는 단 몇 년 만에 인지 노동 시장의 일자리 구조를 바꾸고 있다. 증기기관이나 PC의 보급 당시에는 재교육과 이동을 위한 세대적 시간이 있었으나, 현재의 대체 속도는 인간의 적응 범위를 넘어섰다. 경제적 성과조차 불투명하다. 골드만삭스의 얀 하치우스(Jan Hatzius) 수석 경제학자는 2025년 AI 투자가 미국 경제 성장에 기여한 바가 사실상 0이라고 분석했다. 노동자는 약속된 성장 혜택을 누리기도 전에 사회적 비용을 먼저 지불하고 있다.

AI가 단순 보조 도구를 넘어 전문직의 핵심 정체성을 구성하던 영역까지 침범하며 AIRD라는 심리적 증상이 구체화됐다. 과거의 기술 혁신이 노동의 양을 줄였다면, 지금의 생성형 AI는 노동의 가치와 존재 이유를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경제적 손실보다 무서운 것은 전문가로서의 자아 상실이다. 기술 고도화가 가져온 정체성 붕괴는 이제 개인의 적응력을 넘어 사회적 차원의 심리적 지원 체계 마련이라는 과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