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캐나다의 한 법률 사무소 집무실.

책상 위에는 수백 페이지 분량의 계약서 뭉치와 모니터 속의 AI 초안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이 장면 뒤에 거대한 자본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Clio의 매출 급증과 자본 유입

Clio(법률 사무소 관리 소프트웨어 기업)는 최근 연간 반복 매출(ARR, 매년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매출) 5억 달러를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2023년 AI 기능을 통합한 이후 성장세가 가팔라졌다. 2024년 중반 2억 달러였던 ARR은 작년 말 4억 달러로 두 배 증가했으며, 현재 5억 달러에 도달했다.

자본 시장의 평가도 구체적이다. Clio는 지난 11월 5억 달러 규모의 시리즈 G(후기 단계 투자 라운드)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 가치 50억 달러를 인정받았다. 데이터 확보를 위한 공격적 행보도 확인된다. 작년에는 데이터 인텔리전스 플랫폼(데이터 분석 및 통찰 제공 도구)인 vLex를 10억 달러에 인수하며 법률 리서치 AI 역량을 강화했다.

다른 법률 AI 기업들의 수치 역시 유사한 궤적을 그린다. Harvey(법률 AI 서비스 기업)는 2025년 말까지 ARR 1억 9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Legora(법률 AI 플랫폼 기업)는 플랫폼 출시 18개월 만에 ARR 1억 달러를 돌파했다. 최근 법률 테크 커뮤니티 내에서 ARR 산정 방식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으나, 문서 검토와 초안 작성 같은 고비용 업무의 자동화라는 실질적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

공급자와 경쟁자의 경계 붕괴

과거 LLM(거대 언어 모델)의 가장 강력한 수익 모델은 코드 작성 분야였다. 전 세계에 공개된 방대한 코드 저장소가 학습 데이터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법률 분야는 이제 막 그 가능성이 수치로 증명되고 있다. 법률 사무소가 보유한 방대한 계약서와 합의서 뭉치는 코드 저장소와 유사한 성격의 텍스트 데이터 저장소 역할을 한다.

주목할 점은 도구의 공급자와 서비스 제공자의 관계 변화다. Harvey와 Legora는 Anthropic의 모델인 Claude를 핵심 엔진으로 사용해 왔다. 그러나 Anthropic은 최근 법률 특화 플러그인인 Claude for Legal(법률 전문 기능 확장 도구)의 기능을 확장하며 직접 시장에 진입했다. 핵심 모델 공급자가 곧 경쟁자가 되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시장에 생기는 실제 영향은 서비스의 계층 구조 변화다. 과거에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도구 제공에 그쳤던 법률 테크 기업들이 이제는 데이터 인텔리전스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Clio가 vLex를 10억 달러에 인수한 것은 단순한 기능 확장이 아니라, 모델 학습과 추론의 핵심인 고품질 법률 데이터셋을 선점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다. Claude for Legal의 첫 등장 당시 법률 테크 기업들의 주가가 하락했던 사례는 시장이 모델 제공자의 진입을 얼마나 위협적으로 느끼는지 보여준다.

법률 AI 시장의 최종 승자는 모델의 파라미터 수가 아니라, 폐쇄적인 법률 데이터를 얼마나 독점적으로 확보하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