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7 정상들이 목격한 'AI 스위치'의 위험
지난 수요일 열린 G7 정상회의 오찬 자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미국이 언제든 자국의 최첨단 AI 모델 접근권을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마크롱 대통령은 샘 올트먼 OpenAI CEO,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Anthropic, 미국의 AI 스타트업) CEO,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한 자리에서 미국이 어느 날 갑자기 '스위치를 끌 수 있다면' 유럽 고객의 경제적 피해는 물론 AI 기업 자체에도 타격이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논의가 급물살을 탄 직접적인 계기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였다. 미국 정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앤스로픽의 최신 모델인 Mythos 5와 Fable 5의 수출을 차단했다. 이번 결정은 아마존(Amazon)이 일부 안전 가드레일을 우회할 수 있다는 점을 백악관에 알리면서 이뤄졌다.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적한 기능이 이미 공개된 OpenAI 모델 등에서도 발견된다고 주장하지만, 앤스로픽의 해당 모델들은 여전히 수출 제한 상태에 묶여 있다.
모디 총리 역시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 보도를 통해 앤스로픽 모델 차단 조치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민주주의 국가들이 핵심 인프라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최첨단 AI 모델에 대해 제약 없는 접근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주권과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체제
이번 사건은 미국 AI 인프라 위에 서비스를 구축한 전 세계 기업과 정부가 직면한 실존적 리스크를 드러냈다. 구체적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하룻밤 사이에 접근 권한이 취소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현실화된 것이다. 캐나다의 기업용 AI 기업 코히어(Cohere)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에이단 고메즈는 이번 제한 조치가 소수의 빅테크 기업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확인시켜 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디지털 주권이 단순한 시장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향후 수십 년간 경제 안보와 국가 주권을 결정지을 기초 기술의 통제권 문제라고 짚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G7 정상들은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trusted partners)' 체계 구축을 논의했다. 이 계획은 앤스로픽이나 OpenAI 같은 기업의 첨단 AI 모델을 미국 외 국가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일종의 개방형 무역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골자다. 특히 중국과 같은 경쟁국에 맞서 더 강력한 방어 체계를 구축하는 데 모델을 사용하는 국가나 기업이라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정받아 미국 정부의 제한 조치를 우회할 수 있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워싱턴이 이러한 체계를 지원하고 Mythos 모델에 대한 접근권을 더 폭넓게 허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AI 접근권을 위해 비용을 지불할 구매자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모델의 성능이 압도적이라 포기할 수 없으면서도, 동시에 그 종속성에서 벗어나려는 'AI 주권' 추구라는 모순된 흐름이 충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AI 실무자가 직면한 인프라 종속 리스크
미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API 기반으로 서비스를 운영하는 한국의 AI 개발자와 기업들에게 중요한 판단 기준을 제시한다. 가장 먼저 관찰해야 할 지점은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체계의 구체적인 선정 기준과 범위다. 만약 한국 기업이 사용하는 핵심 모델이 미국의 국가 안보 논리에 따라 갑자기 차단된다면, 파리나 뱅갈로르의 스타트업이 겪은 것처럼 예고 없이 제품 서비스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실무자들은 이제 모델의 성능(Performance)뿐만 아니라 공급의 안정성(Stability)을 리스크 관리 항목에 넣어야 한다. 특정 국가나 기업의 인프라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는 정책적 변수에 따라 비즈니스 연속성이 끊길 수 있는 취약점을 가진다. 따라서 단일 모델 의존도를 낮추는 멀티 모델 전략이나, 자체적인 소버린 AI(Sovereign AI, 국가별 문화와 가치를 반영한 독립적 AI) 인프라 확보가 단순한 기술적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리스크 분산 전략으로 작동하게 된다.
결국 이번 사건은 미국 AI 모델의 성능 우위가 주는 혜택보다, 그 통제권이 미국 정부에 있다는 사실이 주는 불확실성이 더 커지는 변곡점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수출 제한 리스트와 '신뢰 파트너' 협약의 진행 상황을 면밀히 살피며, 인프라 종속에 따른 서비스 중단 시나리오를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