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AI 액션 서밋 무대 위, Mistral(프랑스의 AI 스타트업)의 CEO 아르튀르 멘슈가 연설을 시작한다. 청중의 시선은 대부분 OpenAI의 샘 올트먼이나 Anthropic의 다리오 아모데이 같은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에게 쏠려 있다. 하지만 멘슈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소수의 경영진과 연구자들은 다른 답을 찾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아닌 국가 스스로가 AI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140억 달러 가치와 유럽의 자본 포석

Mistral은 최근 기업 가치 140억 달러를 인정받았다. ASML(반도체 초미세 공정에 필수적인 노광 장비를 만드는 기업)이 주도한 20억 달러 규모의 투자 라운드가 결정적이었다. 지금까지 확보한 총 투자금은 31억 달러에 달하며 여기에는 BNP 파리바와 Bpifrance 같은 프랑스 금융 기관의 자금이 포함됐다. 2025년 매출은 200달러를 기록했다. 멘슈는 올해 12월까지 월 매출 8000만 달러 달성을 목표로 잡았다. 다만 높은 컴퓨팅 비용과 데이터 처리 비용으로 인해 아직 영업 이익은 마이너스 상태다.

고객사 명단은 유럽의 핵심 산업군을 관통한다. 자산 3조 달러 규모의 HSBC(영국계 글로벌 은행)와 매출 700억 달러의 Tesco(영국 최대 유통 기업), 그리고 세계 3위 해운사인 CMA(프랑스 해운 기업)가 Mistral의 기술을 도입했다. 프랑스 정부는 군사 기관부터 구직자 지원국까지 정부 부처 전반에 Mistral의 AI를 이식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싱가포르 군 당국과 그리스, 룩셈부르크 정부 역시 Mistral과 협력 중이다.

성능 지표를 넘어선 주권의 기준점

예전에는 AI 모델의 벤치마크(성능 측정 지표) 수치가 절대적인 선택 기준이었다. 현재 Mistral의 최상위 모델은 9개월 전 출시된 Anthropic의 Claude 모델보다 성능이 낮게 측정된다. DeepSeek(중국의 AI 스타트업)나 알리바바가 내놓은 오픈 웨이트 모델들에게도 밀리는 형국이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쏟아붓는 천문학적인 자본력과 중국 기업들의 데이터 증류(기존 고성능 모델의 답변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하는 기법) 전략이 만든 격차다.

이제 시장의 기준점은 단순 성능에서 데이터 주권으로 이동하고 있다. Mistral은 오픈 웨이트(모델의 가중치 값을 공개해 누구나 수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방식) 전략을 취한다. 사용자는 모델을 자신의 서버에 내려받아 오프라인으로 실행하거나 자체 데이터로 맞춤 설정할 수 있다. 데이터가 사무실 밖으로, 혹은 국경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는 블랙박스(내부 작동 원리를 알 수 없는 폐쇄적 구조) 형태의 미국산 LLM(거대언어모델)에 거부감을 느끼는 유럽 정부와 기업들에게 강력한 소구점이 됐다.

개발자가 체감하는 변화는 인프라의 통제권 회복이다. 미국 정부의 규제 변화나 무역 전쟁으로 인해 소프트웨어 공급망이 끊길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 특히 독일 정부가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를 폐기하고 프랑스가 자체 화상 회의 도구를 도입하는 흐름과 맞물려 Mistral의 입지는 더욱 단단해졌다. 성능의 절대적 우위보다 안전한 통제권을 선호하는 틈새시장을 정확히 파고든 결과다.

성능의 정점이 아닌 주권의 정점을 노리는 전략이 실리콘밸리의 독주를 막는 유일한 포석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