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의존에 따른 전문 역량 하락 수치와 사례
업무 현장에서 AI 도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숙련도가 중요한 전문직의 역량이 퇴보하는 '디스킬링(deskilling)' 현상이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됐다. 가장 뚜렷한 사례는 의료 현장의 내시경 전문의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나타났다. 폴란드에서 대장내시경을 최소 2,000회 이상 수행한 전문의들을 대상으로 실시간 선종(adenoma) 표시 AI 시스템을 제공한 결과, AI 도입 전 3개월간 28.4%였던 선종 발견율이 AI 도입 후 AI 없이 수행한 검사에서는 22.4%로 하락했다. 해당 연구 결과는 지난 10월 'The Lancet Gastroenterology and Hepatology'에 게재됐다.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관찰됐다. AI 기업 Anthropic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52명을 대상으로 무작위 대조 실험을 설계했다. 모든 참가자에게 웹 검색과 작업 안내 접근 권한을 부여한 상태에서, 절반의 그룹에만 AI 어시스턴트 사용을 권유했다. 작업 완료 후 학습 내용에 대해 실시한 퀴즈에서 AI 사용 그룹의 평균 점수는 50%에 그쳤으며, 이는 AI를 사용하지 않은 그룹의 67%보다 유의미하게 낮은 수치다. 특히 AI 보조 그룹은 자신이 방금 작성한 코드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코드 오류 진단 문항에서 특히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해당 연구는 프리프린트 서버 arXiv에 게시됐다.
실무자들의 심리적 우려 또한 높다. Wolters Kluwer가 미국 의료 종사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간호사의 70%, 의사의 77%가 AI 시스템에 과도하게 의존함으로써 발생할 역량 상실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지 능력 자동화와 '수행-학습'의 단절 메커니즘
이번 연구들이 가리키는 핵심은 AI가 단순 반복 작업이 아닌 '사고와 해석'이라는 인지 능력을 자동화하면서 발생하는 수행 능력과 학습 능력의 단절이다. 과거 GPS 내비게이션이 인간의 길찾기 능력을 약화시킨 것과 유사한 원리지만, 생성형 AI는 그 대상이 고차원적인 지적 판단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작동 방식의 관점에서 보면, AI 보조 도구는 사용자에게 실시간으로 정답이나 가이드를 제공함으로써 인지적 부하를 낮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전문의나 엔지니어는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인지적 결정' 단계에서 동기부여와 집중력이 저하된다. 결과적으로 AI가 제공하는 기술을 빌려와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수행'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 필요한 원리와 개념을 내재화하는 '학습'은 이루어지지 않는 구조다.
이러한 현상은 지식 집약적 직군 전반에서 나타나는 공통적 특성이다. 2018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10년 이상 자동화된 비(非)AI 회계 시스템을 사용한 회계사들은 도구가 사라지자 일상적인 업무 수행 방법을 잊어버린 것으로 확인됐다. 즉, 도구가 인지 과정을 대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인간이 보유했던 기존의 숙련도는 빠르게 침식된다.
실무자 및 교육 단계에서의 기술 침식 대응 방안
개발자와 의료진 등 실무자는 AI 도입 시 '수행 효율'과 '역량 유지' 사이의 트레이드오프(Trade-off)를 구체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특히 기초 역량을 쌓아야 하는 학생이나 주니어 전문가의 경우, AI 어시스턴트의 사용이 코딩의 기초 원리나 임상적 판단 근거를 학습할 기회를 박탈할 위험이 크다.
실무 단계에서 적용해야 할 구체적인 판단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AI의 출력을 검증 없이 신뢰하지 않고, AI가 도출한 결과의 근거를 역으로 추적하는 프로세스를 유지해야 한다. 둘째, 어떤 기술을 AI에 외주화하고 어떤 핵심 기술을 인간이 직접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경계 설정이 필요하다. 셋째, AI 없이 작업을 수행하는 '수동 모드'의 훈련 시간을 의도적으로 배치하여 인지적 근육이 퇴화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결국 생성형 AI 시대의 전문성은 AI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가 아니라, AI가 제공하는 결과물의 오류를 잡아낼 수 있는 '기초 숙련도'를 어떻게 보존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AI 의존과 의식적 경계 유지 사이의 역학 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향후 10년 전문직 운영의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