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업무 예산과 보너스는 삭감되었으나 AI 도입 비용은 즉시

재무 담당자가 예산 삭감 통보를 내린 직후, AI 관련 지출 결재 서류에는 즉시 승인 도장이 찍혔다. 회사는 수년간 직원 보너스 지급을 전면 취소하며 강도 높은 긴축 경영을 이어왔다. 신규 인력 채용은 완전히 중단됐으며 기존에 사용하던 소프트웨어 라이선스와 데이터베이스 유지 비용까지 가차 없이 삭감 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외부 컨설턴트 고용비와 LLM(거대언어모델) 워크숍 운영비는 예외였다. ChatGPT와 Copilot(코파일럿) 라이선스 비용 역시 복잡한 검토 과정 없이 즉시 집행됐다. 실무진이 체감하는 예산의 벽은 AI라는 키워드 하나로 허물어졌다. 전사적인 비용 절감 원칙이 AI 도입이라는 명분 앞에서만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모순이 발생했다.

실무 현장에서는 평범한 수준의 작업을 수행하면서도 스스로를 거대한 혁명의 주역으로 인식하는 현상이 빠르게 퍼졌다. AI라는 도구가 사용자의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Effect, 실제 능력보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인지 편향)를 증폭시킨 결과다. 사용자는 자신이 시도하는 모든 일이 이전보다 더 똑똑하고 정당해 보인다고 믿는다. 이 과정에서 실질적 가치가 낮은 무가치한 작업들이 획기적인 성과인 것처럼 포장되어 상부에 보고된다.

조직 내에서 유능하다고 인정받던 핵심 인력들의 변화는 더욱 뚜렷하다. 이들은 뚜렷한 논리적 이유나 구체적인 비즈니스적 근거 없이 AI 기업의 홍보원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도구의 도입이 개인의 전문성 판단 기준을 흐리고 있다. 도구가 주는 심리적 고양감이 실제 업무가 창출하는 실질적 가치를 완전히 가리고 있다.

수백 명이 참여한 전사 LLM 프로젝트가 단 한 건의 성공

인력 충원이 제한된 예산 상황에서 AI 도구 도입만 서두를 때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가. 수백 명의 임직원이 투입된 전사 LLM(거대언어모델) 프로젝트는 단 한 건의 성공 사례도 내지 못했다. 여러 팀이 열성적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하며 기술적 가능성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최종 결과물은 실제 환경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시간을 절약하기는커녕 기존보다 업무 절차가 더 복잡해지는 결과로 귀결됐다. 투입된 인원수와 열의가 성과로 이어지지 않은 전면적인 실패였다.

현장에서 제시된 AI 활용 사례들은 실질적인 효율성이 없는 무의미하거나 비효율적인 수준이었다. 챗봇에게 단순히 기분을 묻는 식의 단순 대화가 사례로 등장했다. 1페이지 분량의 구내식당 메뉴를 확인하기 위해 ChatGPT(OpenAI의 대화형 AI)를 사용하는 모습도 시연됐다. 보안 위험이 있는 의심 메일을 ChatGPT에 업로드해 분석하는 방식이 활용안으로 제시됐다. 이러한 과정은 사용자가 직접 정보를 확인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만든다. 도구의 기능이 실제 업무의 병목을 해결하는 지점에 닿지 못했다.

AI 도입이 실제 문제 해결인지 아니면 보여주기식 명분인지 판별하는 기준은 명확하다. 도구가 투입된 후 실제 작업 시간이 물리적으로 단축되었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단순한 기능 구현이나 도구의 사용 경험 자체는 비즈니스 임팩트를 만들지 못한다. 업무의 복잡도를 낮추지 못하고 오히려 단계를 추가하는 AI 도입은 효율화가 아니라 리소스의 낭비로 끝난다. 실제 문제 해결과 무관한 기술 도입은 조직의 피로도만 높인다.

확인해야 할 핵심 지점

실무자의 판단보다 관리자의 지시가 우선시되는 현장이다. IT 책임자가 스팸이나 피싱이 의심되는 메일을 처리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수상한 첨부 파일이 포함된 메일을 데스크톱에 저장한 뒤 ChatGPT(챗GPT, 생성형 AI 챗봇)에 업로드해 확인하라는 권고다.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직원은 지시대로 파일을 저장하는 과정에서 업무용 노트북을 보안 위험에 직접 노출한다. 보안 위협이 있는 파일을 로컬 환경에 내려받게 만드는 방식이다. 도구의 활용성이 보안의 기본 원칙을 앞지른 결과다.

자금난은 그동안 조직의 변화를 막는 가장 강력한 명분이었다. 새로운 시스템 도입이나 조직 개편에 수년에서 십 년이 걸리던 조직이 AI(인공지능) 인프라 구축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필요한 역량과 장비를 순식간에 갖춘 모습은 기존의 제약이 본질적인 한계가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느린 변화가 조직의 기본값이 아니라 관리자의 의도적인 설계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가면이 벗겨진 순간이다. 기술 도입의 속도가 오히려 조직 내 신뢰를 무너뜨리는 기폭제가 됐다.

인력 충원은 제한됐지만 AI 툴 도입은 서두르는 모순이 계속된다. 수백 명이 투입된 전사 LLM 프로젝트 중 성공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1페이지 메뉴 요약이나 의심 메일 업로드 같은 무의미한 활용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제 AI 도입이 실제 업무의 문제를 해결하는지, 보여주기식 명분인지 판별해야 한다. 기술의 소유가 아니라 문제 해결의 결과값이 기업의 실질적 경쟁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