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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 비용의 하락은 제품 개발의 문턱을 낮췄지만, 동시에 '무엇을 만들 것인가'라는 전략적 결정의 병목을 가시화했다. AI의 도입으로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시간과 비용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과거에는 비용 문제로 인해 강제되었던 '사전 검증' 단계가 생략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 기업의 사례를 보면 이러한 함정이 명확히 드러난다. 이 회사는 2년 반 동안 네 차례에 걸쳐 제품을 다시 구축했다. 음성 인터페이스와 세련된 웹 앱, 수준 높은 문제 해결 엔진까지 모두 구현했지만, 정작 누구를 위한 제품인지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해 고객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했다. 구현이 병목이 아니었기에 여러 시도를 빠르게 할 수 있었으나, 시도와 시도 사이에 명확한 의사결정 절차가 없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AI가 해결한 것은 '구현할 수 있는가'라는 실현 가능성 위험(Feasibility Risk)이다. 하지만 '이 제품이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가치 위험(Value Risk)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결과적으로 제작 속도가 빨라진 환경에서 팀은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어내지만, 그것이 시장에서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은 구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불균형 상태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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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경쟁 상대는 내부의 프로세스나 경쟁사의 기능이 아니라, 사용자의 무관심과 대안, 그리고 전환 비용이다. 디자인 업계의 논의는 주로 안목(Taste)이나 시스템 설계, 웹 표준과 같은 '어떻게 더 잘 만들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결과물의 품질을 높이는 '칼'을 가는 작업일 뿐, 시장의 현실이라는 '총격전'에서 승리하기 위한 사거리(전략)를 확보하는 것과는 다르다.

과거의 높은 구현 비용은 역설적으로 나쁜 결정을 막는 안전장치 역할을 했다. 2009년 맨해튼에 바(Bar)를 열 때, 15만 달러의 자금과 6주의 시간이라는 제약이 있었기에 운영자는 주변 경쟁 업장을 철저히 조사하고 '동네 거실 같은 공간'이라는 명확한 전략을 세워야만 했다. 비용이 발생하기 전에 아이디어를 솔직하게 검증하도록 강제된 구조였다.

반면 AI 시대의 값싼 실험은 중단 능력을 약화시킨다. 실험 비용이 낮아질수록 실패한 아이디어를 포기하게 만드는 압력이 줄어들며, 이미 들인 노력에 매몰되어 제품을 불필요하게 오래 유지하는 경향이 생긴다. 여러 시도가 각각 그럴듯한 완성품처럼 보이기 때문에, 팀은 이를 실제 진행 상황으로 오인하며 인적 자원을 소모하는 '종료 시점 없는 비상 훈련' 상태에 빠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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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자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잘 만든 제품'과 '필요한 제품'을 구분하는 것이다. AI가 무한한 선택지를 생산할수록 좋은 결과물을 골라내는 판별 능력은 중요해지지만, 그것이 곧 제품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이제 제품 담당자의 레버리지는 구현 역량이 아니라 '무엇이 존재할 가치가 있는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왜 지금 필요한지'를 결정하는 능력으로 이동했다.

로만 피클러(Roman Pichler)의 제품 전략 프레임워크는 실행보다 상위에 놓이는 핵심 선택을 '누구를 위한 것인가'와 '그 사람이 왜 제품을 원해야 하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으로 압축한다. 제품 조직의 역할은 구현물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 가치가 있는지 결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의 'Jobs to Be Done' 이론은 고객이 제품 자체를 사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일을 수행하기 위해 제품을 '고용'한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통근자가 지루함을 달래고 포만감을 유지하기 위해 밀크셰이크를 선택했다면, 실제 경쟁 상대는 다른 브랜드의 셰이크가 아니라 '베이글'이나 '지루함' 그 자체다. AI는 새로운 셰이크를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지만, 고객이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해 제품을 고용하는지는 스스로 알지 못한다.

결국 AI 시대의 제품 생존은 '제거하는 능력'에서 결정된다. 콘텐츠 전략 서비스 스키프트(Skift)가 초기 설계했던 네 가지 핵심 기능을 시장 반응에 따라 세 개, 두 개로 줄여나간 뒤에야 작동하는 제품을 찾았던 것처럼, 공개 시장에서 원하지 않는 부분을 과감히 쳐내는 결정이 필요하다. 구현이 거의 무료가 된 시대에 판단 능력의 부재는 더 빠르게 드러나며, 시장이 결론을 내리기 전에 조직이 먼저 가치 위험을 정의하고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