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파운드리는 디자인 및 제작 공정 전반에 AI를 사용하지

돈은 항상 편한 곳으로 흐른다. 디자인 업계 역시 ChatGPT나 Midjourney(미드저니, 이미지 생성 AI) 같은 도구로 공정을 단축해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한 폰트 파운드리는 디자인과 제작 공정 전반에서 AI 도입을 전면 거부했다.

저자는 AI가 제공하는 경로를 언덕이나 장애물이 없는 경치 좋은 길처럼 보이지만, 결국 목적지가 아닌 사막으로 이끄는 길이라고 정의한다. AI가 제시하는 편의성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목표와는 거리가 멀다는 판단이다. 해당 파운드리는 이러한 이유로 인간의 손으로 직접 작업하는 전통적인 생산 방식을 고수한다.

AI 도구는 현실을 약 2021년까지의 유한한 데이터 세트로만 인식한다. 저자는 이 상태를 플라톤의 동굴(Plato’s Cave, 동굴 벽의 그림자를 실체로 착각하는 비유) 속 그림자에 비유한다. 현재의 AI는 기존 데이터를 재조합해 정교한 그림자 인형극을 만드는 데는 능숙하지만, 동굴 밖의 실제 세계를 직접 관찰하고 반영하는 능력은 없다.

학습 데이터의 한계에 의존하는 생성 방식은 창조적 다양성을 해치고 소수 문화가 가진 고유의 시각 언어를 소멸시킨다. 이는 AI가 내놓는 결과물이 진정한 창조물인지, 아니면 유한한 과거 데이터의 파편을 모은 복제물인지 판단하는 핵심 기준이 된다.

확인해야 할 핵심 지점

손끝의 미세한 떨림이나 도구의 저항감 없이 완성된 결과물은 어딘가 매끄럽기만 하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글자들은 단순한 추상적 도형이 아니라, 수천 년에 걸친 인간의 진화와 신체적 제약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글자 'A'는 본래 황소 머리를 묘사한 그림에서 유래하여 오랜 시간을 거쳐 현재의 형태로 변모했다. 세리프(serif, 글자 끝의 장식선)의 기원 또한 고대 로마 시대의 구체적인 물리적 작업 과정에 있다. 당시 기록자는 오른손에 평붓을 쥐고 선을 그을 때, 시작과 끝부분에 짧은 수평 획을 긋는 동작을 통해 더 깔끔한 선을 구현했다. 글자의 형태는 단순히 디자인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이 도구와 상호작용한 기록이다.

Midjourney(미드저니, 이미지 생성 AI)는 황소를 그리라는 요청을 수행할 때 고향이라는 정서적 개념을 떠올리며 픽셀을 배치하지 않는다. ChatGPT(챗GPT, 대화형 AI)가 새로운 캘리그라피 기술을 발명할 수 없는 이유 역시 동일한 신체적 한계 때문이다. 새로운 예술적 기법의 진보는 보통 기존의 방식에서 느끼는 손목의 불편함이나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AI는 불편함을 느낄 손목이 없으며, 따라서 신체적 고통이나 필요에 기반한 창조적 도약을 이뤄낼 수 없다. 생성형 AI는 인간의 신체적 경험이나 감정적 동기가 결여된 채 오직 데이터의 통계적 확률로만 형태를 생성한다.

로봇 학습 데이터 병목을 겨냥한 해법

생성형 AI는 수십 년이 걸리던 디자인 공정을 단 몇 초로 압축했다. 그러나 이러한 효율은 학습 데이터가 충분히 확보된 주류 언어에만 국한되어 작동한다. 현재 전 세계의 수많은 언어는 서체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는 상태이며, 해당 문화권이 경험하는 타이포그래피의 범위는 열쇠구멍을 통해 내부를 엿보는 수준으로 매우 제한적이다. AI는 기본적으로 기존 데이터의 통계적 분포를 학습하므로, 데이터가 부족한 언어와 문화에 새로운 시각적 기회를 제공하거나 확장된 가능성을 열어줄 수 없다. 데이터의 양이 곧 시각적 표현의 권한을 결정하는 병목 현상이 발생한다.

AI의 시장 점유율 확대는 지역적 전문성을 갖춘 디자이너의 위축과 새로운 아이디어의 고갈로 이어진다. 새로운 시각적 실험을 하는 디자이너를 지원하고 장려하는 서체 산업의 생태계가 무너지면, 소외된 문화의 타이포그래피가 독자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사라진다. 지역적 특수성을 이해하는 전문가의 활동 영역이 AI의 결과물로 대체될수록, 소수 문화의 시각 언어는 주류 데이터에 흡수되거나 도태된다. AI가 시장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여 서체 산업의 자생력이 상실될 경우, 데이터 부족으로 소외된 문화의 타이포그래피 문은 영구적으로 닫히게 된다.

ChatGPT와 Midjourney가 제공하는 자동 생성의 편의성은 명확하다. 그러나 로마 시대 붓의 각도와 손목의 움직임이 세리프라는 형태적 진화를 만들었듯, 디자인의 본질은 신체적 경험에 있다.

학습 데이터에 의존하는 AI는 통계적 확률로 형태를 복제하며 소수 문화의 시각 언어와 창조적 다양성을 소멸시킨다. 결과물이 과거 데이터의 파편인지, 신체적 동기가 담긴 창조물인지 구분하는 기준이 이제 유일한 변별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