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과학자에게 열린 '무제한 컴퓨팅'과 NVIDIA DGX Vera Rubin
고성능 GPU 자원을 사용하는 조직에서 무제한이라는 말은 대개 예산이 바닥나거나 대기 순번이 끝날 때까지라는 조건부 약속에 가깝다. 자원 할당을 요청하고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는 시간은 연구의 흐름을 끊는 가장 큰 병목이자 보이지 않는 비용이다.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MS)는 이 지점을 해결하기 위해 8대의 DGX Vera Rubin NVL72 시스템으로 구성된 두 번째 DGX SuperPOD(슈퍼포드, NVIDIA의 AI 인프라 클러스터)를 구축했다. 내부적으로 슈퍼두퍼포드(SuperDuperPOD)라 부르는 이 시스템의 목적은 명확하다. 소수 전문가만 접근하던 슈퍼컴퓨터 권한을 모든 과학자에게 개방해 자원 대기 시간과 할당 제한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이번 시스템의 하드웨어 구성은 NVIDIA Vera CPU와 Rubin GPU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히 장비의 숫자를 늘린 것이 아니라 전력 효율과 연산 밀도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했다. BMS가 공개한 수치에 따르면 이 새로운 인프라는 기존 시스템 대비 메가와트(MW)당 성능을 최대 10배까지 향상시켰다. 전력 소모량 대비 산출물을 10배 높였다는 것은 동일한 에너지 비용으로 10배 더 많은 예측 모델을 실행하거나 더 넓은 화학 공간을 탐색할 수 있음을 뜻한다. 이는 인프라 운영 비용의 효율성을 확보하면서도 연구자가 체감하는 컴퓨팅 파워를 비약적으로 높여 무제한 컴퓨팅 환경을 구현한 결과다.
하드웨어 증설보다 더 중요한 지점은 전 세계 모든 BMS 사이트에서 접속 가능한 단일 데이터 평면(Single data plane, 데이터가 물리적 위치에 상관없이 통합되어 흐르는 구조)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과거 인수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사이트별 제약이나 복잡한 접근 권한 설정 때문에 데이터와 컴퓨팅 자원이 파편화되어 있었다. 이제 연구자들은 자신의 물리적 위치와 상관없이 통합된 AI 플랫폼에 접속해 즉각적으로 연산을 수행할 수 있다. 이는 개별 연구실 단위의 최적화가 아니라 조직 전체의 지식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누적되는 구조를 통해 연구 효율을 극대화한 설계다. 데이터가 흐르는 길을 하나로 합쳐 물리적 거리를 지웠다.
실무자 관점에서 이번 사례의 판단 기준은 단순한 GPU 증설이 아니라 접근성(Accessibility)의 설계에 있다. 아무리 강력한 Rubin GPU를 도입해도 사용자가 자원 할당 프로세스라는 행정적 절차에 막혀 있다면 그 인프라는 사실상 유휴 자원이 된다. BMS는 하드웨어 성능 향상과 더불어 단일 데이터 평면이라는 소프트웨어적 접근 경로를 일치시켜 연구 병목을 제거했다. 내일 당장 인프라 확장을 고민한다면 GPU의 개수보다 연구자가 로그인을 하고 첫 번째 연산을 시작하기까지의 단계가 얼마나 짧은지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인프라의 가치는 최대 성능이 아니라 실제 연구자의 손에 닿는 빈도에서 결정된다.
BioNeMo와 Mission Control이 만드는 AI 네이티브 연구
연구자가 슈퍼컴퓨터 자원을 할당받기 위해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거나 사용량 제한 메시지를 마주하는 일은 AI 연구 현장의 흔한 풍경이다. BMS는 이러한 병목을 해결하기 위해 NVIDIA BioNeMo Agent Toolkit(생물학적 AI 예측 및 모델 훈련 도구)을 도입하여 연구 환경을 재설계했다. 이 툴킷은 연구자가 복잡한 인프라 설정이나 환경 구축 과정 없이도 생물학적 AI 예측을 수행하고 모델을 직접 훈련할 수 있는 통합 환경을 제공한다. 컴퓨팅 자원 확보라는 물류적 고민을 걷어내고 오직 과학적 가설 검증과 모델 고도화라는 본질적인 연구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구조다.
실제 구동 단계에서는 NVIDIA Mission Control(AI 네이티브 툴링 관리 시스템)이 복잡한 도구들의 배포와 실행 권한 및 관리를 전담한다. 연구자는 터미널에 복잡한 쉘 스크립트를 입력하거나 CUDA 버전을 맞추는 대신 평문 영어(Plain English)로 자신이 원하는 예측 작업을 요청한다. 특정 단백질 구조의 예측이나 분자 결합력 분석 같은 고도의 연산 작업을 일상 언어로 시작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구축된 것이다. 이는 전문적인 컴퓨팅 지식이 없는 생물학자나 화학자라도 슈퍼컴퓨팅의 성능을 즉시 끌어다 쓸 수 있게 하여, 기술적 진입 장벽을 완전히 제거한 결과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에이전트 워크플로(Agentic workflows)가 약물 발견 파이프라인 전체의 자동화를 이끈다. 에이전트는 개별 연구 프로그램이나 부서라는 사일로(Silo, 고립된 조직)를 넘어 전체 데이터 평면을 가로지르며 학습하고 판단을 내린다. BMS 내부의 방대한 지식이 학습된 가상 과학자 군단이 연구자의 보조 역할을 수행하며, 이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도구 사용을 넘어 연구자 한 명이 거대한 전문 팀의 역량을 갖게 되는 효과를 낸다. 연구자는 가상 과학자가 도출한 정량적 통찰과 예측치를 바탕으로 최종적인 과학적 의사결정을 내리며, 인간의 직관을 데이터로 보강하는 증강된 연구 체계를 통해 연구 속도를 높인다.
실무 관점에서 이 설계의 핵심은 GPU의 절대적인 개수가 아니라 연구자와 컴퓨팅 자원 사이의 추상화 계층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구축하느냐에 있다. BioNeMo로 생물학적 기능을 정의하고 Mission Control로 접근성을 극대화하며 에이전트로 실행 단계를 자동화하는 흐름은 AI 네이티브 연구소의 실무 표준을 제시한다. 단순한 툴 도입을 넘어 평문 영어라는 가장 낮은 진입 장벽을 통해 고도의 컴퓨팅 파워를 직접 연결하여 인프라를 투명하게 만든 점이 이 워크플로의 실질적인 승부처다. 내일의 연구 인프라를 설계한다면 하드웨어의 성능 수치보다 연구자가 도구에 진입하여 첫 명령을 내리는 문장의 난이도를 낮추는 것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기존 방식과 달라진 지점
신약 개발의 성패는 수만 번의 시행착오를 얼마나 빠르게 줄이느냐에 달려 있다. BMS는 AI 기반 타겟 식별(Target identification, 질병을 일으키는 특정 단백질을 찾아내는 과정)을 도입해 기존에 연구원이 수주 동안 매달려야 했던 수동 작업 시간을 대폭 절감했다. 단순 반복적인 데이터 탐색 시간을 줄임으로써 연구자는 가장 가치 있는 과학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단계에 더 많은 시간을 할당한다. 구체적으로는 AI를 활용해 CELMoD(암 유발 단백질 선택적 분해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확장하는 성과를 냈다. 암을 유발하는 특정 단백질만 선택적으로 분해하도록 설계된 이 화합물 군을 AI로 확장하면서 혈액암 치료제를 포함해 더 넓은 범위의 질병을 타격할 새로운 타겟과 잠재적 약물 후보를 발굴했다.
실험실에서 직접 분자를 합성하기 전 단계에 AI 예측 모델을 배치하는 Predict First 방법론을 적용했다. 이 방식의 핵심은 설계 예측 결과에 따라 실제 실험 진행 여부를 결정하는 실험 게이팅(Experimental gating)을 수행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가설을 세우면 곧바로 실험실에서 합성과 검증을 반복했지만, 이제는 AI가 먼저 후보 물질의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고 통과한 물질만 실험 단계로 넘긴다. 무작정 모든 후보 물질을 합성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AI가 일종의 정밀한 거름망 역할을 수행하는 구조로 전환했다. 이를 통해 실험 단계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 낭비를 사전에 차단하고 연구 사이클의 회전 속도를 높였다.
다중 파라미터 최적화(Multi parameter optimization, 약물의 효능과 독성, 용해도 등 여러 물리화학적 조건을 동시에 최적화하는 기법)를 통해 부적합한 분자를 사전에 제거한다. 연구팀은 AI가 제시한 예측치를 기준으로 분자 합성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며, 목표로 하는 물성 범위(Property landscape)에 부합하지 않는 분자를 합성 단계 이전에 미리 솎아낸다. 이 과정을 거치면 실험실의 귀중한 인력과 장비는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분자를 전진시키는 작업에만 집중적으로 투입된다. 결과적으로 실험의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실험 하나하나의 적중률을 높여 전체 개발 기간을 단축하는 전략을 취한다.
실무자가 이 워크플로를 현장에 적용할 때 고려해야 할 판단 기준은 명확하다. 단순히 AI를 이용해 후보 물질의 숫자를 늘리는 양적 팽창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 단계로 진입하는 관문을 얼마나 좁고 정교하게 설계하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AI 예측 결과가 실제 실험의 성공률을 유의미하게 높인다는 데이터가 확보되었다면, 그때부터는 실험 중심의 프로세스를 예측 기반의 게이팅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AI 도입보다 예측 모델의 정확도가 실험 비용의 절감분보다 큰 지점을 찾는 것이 실용적인 전환 시점이다.
가상 과학자 에이전트가 허무는 연구 사일로(Silo)
프로젝트마다 데이터가 따로 놀아 다른 팀이 이미 겪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일은 연구 현장의 고질적인 문제다. BMS는 뉴저지 로렌스빌과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등 글로벌 사이트 간에 데이터와 모델을 공유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특정 지역의 프로그램에서 생성된 데이터셋이 다른 지역 팀의 모델 학습에 즉시 투입되는 구조다. 과거에는 프로젝트별로 학습 내용이 분절되어 전사적 지능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나, 이제는 모든 실험과 임상 결과, 파트너십 성과가 누적되는 학습 루프가 작동한다. 파편화된 연구 지식이 통합된 프레임워크로 전환되며 연구의 연속성이 확보되었다.
BMS 내부의 전문 지식이 학습된 검증된 가상 과학자 군단이 연구자의 실질적인 보조 역할을 수행한다. 연구자는 더 이상 단독으로 가설을 검증하지 않고, 기업의 축적된 노하우가 내재된 AI 에이전트들과 협업하며 혼자서도 팀 단위의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이는 인간의 직관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정량적인 통찰과 예측으로 보강하는 증강 체계다. 과학자가 방향을 잡고 예외 상황이나 주의점을 찾아내며 AI에게 지식 활용법을 가르치면, AI는 이를 뒷받침하는 수치적 근거와 예측치를 제시한다. 인간의 뇌가 전체 과정을 주도하되 AI가 개별 연구자의 역량을 실질적으로 확장하는 구조다.
컴퓨팅 자원은 소분자와 대분자 설계부터 임상 적용, 디지털 트윈에 이르기까지 약물 발견 파이프라인의 모든 노드에 정밀하게 할당된다. 특정 단계에만 자원을 집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설계부터 적용까지 전 과정에서 AI가 개입하도록 설계했다. BMS는 단순히 최대 규모의 컴퓨팅 파워를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의 모든 단계에 인프라가 스며들게 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러한 배분 방식은 연구자가 자원 할당을 위해 줄을 서거나 물류적인 제약을 고민하는 시간을 없애고 과학적 본질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인프라가 단순한 계산 도구를 넘어 연구 프로세스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신경망 역할을 수행한다.
단순히 GPU 개수를 늘리는 하드웨어 증설 전략은 연구 효율의 비약적 상승으로 직결되지 않는다. 핵심은 에이전트 워크플로를 통해 서로 다른 프로젝트의 결정 사항을 가로질러 학습하고, 이를 통합 데이터 평면 위에서 공유하는 인프라 설계에 있다. 개별 프로젝트의 성과가 전사적 지능으로 환원되지 않는 구조에서는 아무리 강력한 GPU를 도입해도 지식의 사일로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 인프라 도입의 판단 기준을 단순한 연산 성능 수치가 아닌, 지식의 전사적 통합 수준과 연구자의 실질적 워크플로 개선 여부에 두어야 한다.
한국 AI 실무자를 위한 시사점: 기술보다 '접근성'이 핵심이다
최신 GPU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것과 그것을 현장 연구자가 실제로 활용하게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BMS의 에린 데이비스(Erin Davis) 부사장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실제 과학자의 손에 도구를 쥐여주고 그 과정에서 학습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강조한다. 많은 기업이 하드웨어 도입 후에도 연구자가 자원 할당 대기 시간에 지쳐 연구 흐름을 놓치거나 복잡한 설정법 때문에 도구 사용을 포기하는 상황을 겪는다. 결국 인프라의 성패는 하드웨어의 절대적 스펙이 아니라 연구자가 느끼는 심리적, 기술적 진입 장벽을 얼마나 낮췄느냐에 달려 있다.
BMS는 과거 인수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사이트별 접속 제약이나 고도의 컴퓨팅 전문 지식이 있어야만 도구를 쓸 수 있었던 진입 장벽을 구체적으로 제거했다. 특정 지역의 연구자만 접근 가능했던 데이터 권한이나 복잡한 리눅스 명령어를 입력해야 했던 환경을 AI 네이티브 툴링으로 대체해 전 세계 모든 사이트에서 동일한 경험을 갖게 했다. 전문 지식이 부족한 생물학자라도 평문 영어로 복잡한 예측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구축해 기술적 소외를 없앴다. 이는 인프라 관리자가 기술적 우월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불편함을 제거하는 운영 전략이 우선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기초 모델(Foundational models, 특정 도메인의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다양한 하위 작업에 적용 가능한 범용 AI 모델)을 직접 구축하려면 압도적인 규모의 GPU 자원 확보가 필수적이다. BMS가 무제한 컴퓨팅(Limitless Compute)이라는 개념을 내세운 이유는 단순히 규모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규모 분자 예측과 같은 고부하 작업에서 발생하는 병목 현상을 완전히 없애기 위함이다. 자원 부족으로 인해 연구자가 실험 설계를 타협하거나 우선순위를 강제로 조정하는 상황을 막아야만 진정한 의미의 연구 가속화가 가능하다. 인프라 설계의 기준은 최대 성능 수치가 아니라 연구자가 자원 제약을 전혀 느끼지 않고 아이디어를 즉시 검증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에 둬야 한다.
AI의 확장성과 인간의 판단력을 결합한 협업 구조는 실무 단계에서 가장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할 지점이다. 페이얼 셰스(Payal Sheth) 수석 부사장은 AI가 제공하는 정량적 통찰과 예측이 인간의 직관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강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데이터가 잡아내지 못하는 예외 상황이나 함정(Caveats and gotchas)을 찾아내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며 이를 통해 AI의 결과물을 검증하고 다시 학습시키는 루프를 만든다. BMS 내부 지식이 학습된 가상 과학자 군단을 활용하되 인간이 최종 판단의 키를 쥐고 AI를 확장 도구로 쓰는 워크플로를 설계하는 것이 실무적인 판단 기준이다.
연구자가 GPU 자원을 기다리며 낭비하는 시간은 단순한 대기 시간을 넘어 연구의 흐름을 끊는 치명적인 병목이다. BMS는 8대의 NVIDIA DGX Vera Rubin NVL72 시스템으로 구성된 두 번째 DGX SuperPOD를 구축하고 Vera CPU와 Rubin GPU의 조합으로 메가와트당 성능을 최대 10배 향상시키며 이 문제를 해결했다.
결국 인프라 경쟁력은 단순한 GPU 증설이 아니라 에이전트 워크플로와 통합 데이터 평면을 통해 연구 효율을 얼마나 극대화하느냐에서 갈린다. 하드웨어의 절대 성능 수치보다 지식의 전사적 통합 수준과 실질적인 워크플로 개선 여부를 인프라 설계의 최종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