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치 중심 좌표계가 유발하는 방향 인지 혼란

가상현실(VR) 기기나 로봇 원격제어 장치를 착용한 사용자는 손을 움직일 때마다 방향 감각이 뒤섞이는 불편함을 겪는다. 기존의 웨어러블 햅틱 장치는 대부분 장치 자체의 물리적 위치와 방향을 기준으로 촉각 신호를 보내는 '장치 중심 좌표계'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구조에서는 사용자가 손목을 90도 회전시키면 장치에 고정된 '위쪽' 신호가 실제 공간에서는 '옆쪽'을 가리키게 되어 사용자가 방향 정보를 왜곡해서 해석하게 된다.

이러한 방향성 불일치는 정밀한 조작이 필요한 의료 현장이나 로봇 제어 환경에서 결정적인 오작동 원인이 된다. 사용자는 피부에 닿는 자극 위치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손의 각도 변화에 따라 실제 가리키는 방향이 달라지므로 직관적인 대응이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사용자는 기기가 제공하는 신호와 자신의 실제 신체 방향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추가적인 인지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이는 조작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핵심 요인이 된다.

MCP 관절 기반의 자세 독립형 햅틱 링 PIHR 개발

KAIST 기계공학과 오일권 교수 연구팀은 손가락 관절을 기준으로 촉각 신호를 전달해 손 자세 변화와 무관하게 일관된 방향성을 제공하는 'PIHR(Pose-Independent Haptic Ring)'을 개발했다고 15일 밝혔다. PIHR은 손등과 손가락이 만나는 첫 마디 관절인 MCP 관절(Metacarpophalangeal joint)을 원점으로 삼아 촉각 신호를 매핑하는 장치다. 연구팀은 신호의 기준을 '장치'가 아닌 '사용자의 해부학적 관절'로 고정하여, 손을 어떤 각도로 돌리더라도 동일한 자극이 항상 같은 방향을 뜻하도록 설계했다.

이 방식은 사용자가 손을 굽히거나 회전시켜도 자극이 전달되는 지점이 관절의 위치와 연동되어 함께 움직이므로 방향 정보의 일관성이 유지된다. 기존 햅틱 장치가 단순한 상·하·좌·우 신호를 보냈다면, PIHR은 신체 구조를 기준으로 방향을 인지하게 하여 사용자의 인지 부하를 줄였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별도의 적응 과정 없이도 자신의 신체 방향과 일치하는 촉각 가이드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구면 좌표계 도입과 SMA 액추에이터의 최적 설계

연구팀은 MCP 관절을 중심으로 구의 표면 위 점을 각도로 표현하는 '구면 좌표계'를 도입해 촉각 매핑을 구현했다. 이를 통해 굽힘(flexion·손가락을 안으로 굽힘), 폄(extension·펴기), 벌림(abduction·옆으로 벌림), 모음(adduction·다시 모음)이라는 네 가지 해부학적 방향을 손 자세와 관계없이 일관되게 전달한다. 신호의 기준점을 해부학적 관절에 고정함으로써, 복잡한 자세 센서나 실시간 좌표 변환 연산 없이도 직관적인 방향 안내가 가능해졌다.

좁은 링 구조 내에서 충분한 출력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팀은 SMA(Shape Memory Alloy, 열을 가하면 원래 형태로 돌아가는 형상기억합금) 액추에이터를 적용했다. 액추에이터는 전기적 신호를 물리적 움직임으로 바꾸는 구동기를 의미한다. 연구팀은 구불구불한 격자 형태의 구조를 설계하고 면적 밀도(AD)와 단위 밀도(UD)를 기준으로 성능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AD61–UD4' 형상이 힘 출력, 변위, 응답 속도 사이에서 가장 균형 잡힌 성능을 보임을 확인하고 이를 최종 설계에 반영했다.

1.3뉴턴의 출력 성능과 79.2%의 방향 인식 정확도

최종 구현된 PIHR은 독립적으로 구동되는 4개 채널로 구성되며, 전기적 가열을 통해 각 채널이 수축하며 피부에 국소적인 수직 압입 자극을 전달한다. 이 액추에이터는 1.0암페어 전류에서 약 0.44초 만에 최대 1.3뉴턴의 힘을 내어 실시간 촉각 상호작용에 적합한 응답 속도를 확보했다. 특히 질량당 힘 출력은 84.2N/g으로 측정되어, 기존에 보고된 SMA 기반 웨어러블 햅틱 장치보다 높은 효율을 기록했다. 또한 반복 구동 시에도 피부 접촉 온도가 생체 적합 범위 내에 머물러 착용 안전성을 입증했다.

방향 인식 성능 검증을 위해 10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사전 훈련 없이 손 자세를 계속 바꾸는 조건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네 방향 촉각 신호에 대해 전체 79.2%의 인식 정확도를 기록했다. 이는 무작위 선택 확률인 25%보다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은 수치로, 관절 중심 햅틱 매핑이 자세 변화 상황에서도 직관적인 방향 인식을 제공함을 수치로 증명한 것이다.

실무적 응용 가능성과 학술적 성과

연구팀은 두 가지 시연을 통해 PIHR의 실용성을 확인했다. 눈을 가린 사용자가 관절 중심 방향 신호만으로 터치스크린의 피아노 애플리케이션을 연주하고 화면을 넘겼으며, 로봇 손을 원격제어해 주사기로 액체 양을 단계적으로 조절하는 정밀 작업을 수행했다. 이는 PIHR이 단순한 알림을 넘어 사용자의 움직임을 단계적으로 안내하는 인터페이스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고가의 자세 센서나 복잡한 소프트웨어 로직 없이도 하드웨어 구성을 단순화하며 제어 효율을 높이는 기술적 기준을 제시했다.

이번 연구는 KAIST 기계공학과 김현수 석사과정이 제1저자로, 오일권 교수가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스몰 스트럭처(Small Structures)' 2026년 6월 발행 제7권 6호에 게재되었으며, 해당 호의 표지 논문(Front Cover)으로 선정되었다. (논문명: Pose-Independent Soft Haptic Ring for Joint-Centered Directional Guidance via Multichannel Shape Memory Alloy Actuators, DOI: https://doi.org/10.1002/sstr.202600017)

본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지원사업(RS-2024-00345241), 미래개척융합과학기술개발사업(RS-2023-00302525), 나노·소재기술개발사업(RS-2025-25441263), 그리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InnoCORE 프로그램(N10260002)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