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 환자가 손떨림이나 근육 강직 같은 증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다. 뇌세포의 손상은 증상이 나타나기 수년 전부터 은밀하게 진행된다. 지금까지의 의료 현장은 이미 망가진 신경세포가 보내는 신호를 억제하거나 부족한 물질을 채워 넣는 증상 완화에 매달렸다. 근본적인 파괴 과정을 멈추는 방법은 찾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낸 셈이다.

Seed 2 투자와 ATP13A2 타겟팅 전략

런던 기반의 바이오테크 기업인 Endlyz Therapeutics(세포 내 노폐물 제거 시스템을 연구하는 신약 개발사)가 Seed 2 투자 라운드를 마무리했다. 이번 투자에는 AbbVie(글로벌 제약사), Dementia Discovery Fund(치매 연구 전문 펀드), Oxford Science Enterprises(옥스퍼드대 기술 사업화 기업), Parkinson’s UK(파킨슨병 연구 지원 단체)가 참여했다. 이들은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 근본 원인 신경과학이라는 새로운 지형을 구축하는 포석을 뒀다.

Endlyz Therapeutics는 세포 내 쓰레기 처리장 역할을 하는 리소좀(세포 내 소기관)의 기능 회복에 집중한다. 구체적인 타겟은 ATP13A2와 ATP10B(세포 내 노폐물 제거를 조절하는 단백질)라는 두 가지 단백질이다. 이 단백질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세포 내에 쓰레기가 쌓이고 결국 신경세포가 사멸한다. 회사는 이 시스템을 다시 가동해 세포가 스스로 쓰레기를 치우게 만드는 소분자 화합물 시리즈를 개발 중이다.

자금 흐름은 연구의 정밀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Endlyz Therapeutics는 앞서 Michael J. Fox Foundation(파킨슨병 연구 재단)으로부터 220만 달러를 확보했다. 이 자금은 바이오마커(생체 내 변화를 측정해 질병 진행을 확인하는 지표) 개발에 투입된다. 임상 증상이 나타나기 전 약물의 효능을 미리 확인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 피드백 루프를 단축하겠다는 계산이다. 상세한 포트폴리오 내용은 공식 뉴스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증상 관리에서 질병 수정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과거의 치료 방식은 이미 소실된 기능을 보완하는 사후 처방이었다. 이제는 질병의 진행 자체를 늦추거나 멈추는 질병 수정(Disease Modifying) 방식으로 기준점이 이동했다. 이는 더 이른 시점에 개입해야 함을 뜻하며 측정하기 어려운 초기 지표를 찾아내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다. Endlyz Therapeutics는 이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학계와 AI 기업을 엮는 협력 모델을 선택했다.

연구의 뼈대는 KU Leuven(벨기에 루벤 가톨릭 대학교)의 Peter Vangheluwe 교수와 옥스퍼드 대학교의 Richard Wade-Martins 교수가 맡았다. 리소좀 수송체 전문가와 실제 질병 모델 전문가를 공동 창업자와 파트너로 끌어들여 기초 과학과 임상 모델 사이의 간극을 메웠다. 이론적인 가설이 실제 환자의 뇌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실시간으로 검증하는 구조다.

여기에 SandboxAQ(AI 기반 분자 설계 및 계산 도구 기업)의 AI 레이어가 추가됐다. 계산 과학 도구를 활용해 ATP10B를 활성화하는 최적의 분자를 찾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신약 개발 기간이 보통 수십 년에 달하는 신경과학 분야에서 AI를 통한 속도전은 강력한 경쟁 우위가 된다. 단순한 실험 반복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의 정밀 타격으로 후보 물질을 압축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접근은 수명 연장 과학인 론제비티(Longevity)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날수록 뇌세포의 노폐물 축적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된다. 파킨슨병뿐만 아니라 알츠하이머 등 다른 퇴행성 질환 역시 유사한 메커니즘을 공유한다. 세포의 청소 능력을 복구하는 기술은 특정 질병의 치료제를 넘어 노화 자체를 관리하는 플랫폼 기술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