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모니터에 띄워진 대동맥류(대동맥 벽이 약해져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질환) 영상은 겉보기에 비슷하다. 하지만 어떤 환자의 혈관은 천천히 커지는 반면, 어떤 환자는 갑자기 파열되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의료진은 왜 동일한 크기의 혈관이 서로 다른 속도로 악화되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크기 변화만을 추적해 왔다.

대동맥류 환자 60%에서 발견된 혈액 돌연변이

해외 매체에 따르면 연구진은 복부 대동맥류 수술을 받은 환자 44명을 대상으로 분석을 진행했다. 그 결과 환자의 약 60%가 Clonal Hematopoiesis(혈액 형성 줄기세포에 나이가 들며 돌연변이가 쌓이는 현상)를 보유하고 있었다. 주목할 점은 이 돌연변이를 가진 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대동맥류 성장 속도가 더 빨랐다는 사실이다.

연구진은 Tet2(혈액 세포 분화를 조절하는 유전자) 변이를 가진 동물 모델을 통해 내부 기전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대동맥 내의 Macrophage(노폐물을 제거하는 면역 세포)가 Osteoclast(뼈를 파괴하는 특수 세포)와 유사한 성질로 변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직 분해와 관련된 분자인 MMP9(기질 금속 단백분해효소 9)의 생산이 증가하며 혈관 벽이 얇아지고 탄력성을 잃는 구조적 손상이 발생했다.

RANK/RANKL 경로 차단과 약물 재창출의 의미

이러한 혈관 파괴 과정은 RANK/RANKL(뼈의 생성과 흡수를 조절하는 신호 전달 경로)이라는 시스템에 의해 제어된다. 본래 뼈의 건강을 관리하는 이 경로가 대동맥 내에서 잘못 작동하며 혈관 조직을 파괴하는 도구로 변질된 것이다. 반면 연구진이 이 신호를 차단하자 동물 모델에서 대동맥류의 성장 속도가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주목할 점은 이미 시중에 보급된 골다공증 치료제가 동일한 경로를 타격한다는 점이다. Anti-RANKL(RANKL 단백질을 억제하는 항체) 항체와 Alendronate(뼈 흡수를 막는 비스포스포네이트 계열 약물)를 투여한 쥐 모델에서 대동맥류 진행이 억제되었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신약을 개발하는 대신 이미 FDA(미국 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아 안전성이 검증된 기존 약물을 Repurposing(기존 약물을 다른 질병 치료에 사용하는 것)하여 적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기존의 대동맥류 관리는 영상 진단을 통해 크기를 측정하고 추적하는 방식에 의존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혈액 내 돌연변이라는 생물학적 지표를 결합함으로써 고위험군 환자를 더 정밀하게 선별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다. 불필요한 조기 수술을 줄이거나 치명적인 파열 전 적기에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노화로 인한 혈액의 변질이 뼈와 혈관이라는 서로 다른 조직에서 동일한 파괴 기전을 작동시킨다는 점은 신체 시스템의 통합적 관리가 필수적임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