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겨울이 되면 우리는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갑니다. 작년에 맞았는데 왜 또 맞아야 하는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이유는 독감 바이러스가 아주 빠르게 옷을 갈아입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의 방어 체계가 작년의 옷차림을 기억하고 있어도, 올해 새로 갈아입은 옷을 입은 바이러스는 알아보지 못하고 놓쳐버립니다.

록펠러 대학교가 만든 370개의 혈액 씨앗 세포

해외 매체에 따르면 록펠러 대학교 연구팀이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연구팀은 HSPC(혈액 줄기세포, 피를 만드는 모든 세포의 뿌리가 되는 세포)를 유전적으로 조작했습니다. 이 뿌리 세포가 B세포(우리 몸에서 나쁜 균을 잡는 무기인 항체를 만드는 세포)로 자라나게 하여, 아주 특별한 항체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연구팀은 이 특별한 세포를 쥐에게 주입했습니다. 놀랍게도 아주 적은 양의 세포만으로도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배양한 혈액 줄기세포 370개 중 실제로 조작에 성공한 세포는 단 29개뿐이었지만, 이들만으로도 충분히 항체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항체는 HIV(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여러 종류를 모두 막아냈으며, 9개월이 지난 뒤에도 혈액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열쇠 하나와 마스터키의 차이

우리가 보통 백신을 맞으면 우리 몸은 항체(바이러스 같은 나쁜 놈들을 찾아내서 꽉 잡는 집게 같은 물질)를 만듭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항체는 특정 모양의 바이러스만 잡을 수 있는 전용 열쇠와 같습니다. 바이러스가 모양을 조금만 바꿔도 열쇠가 맞지 않아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래서 매년 새로운 백신을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반면 이번 연구에서 만든 것은 bNAb(광범위 중화항체, 모양을 바꾸는 여러 종류의 바이러스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만능 집게)입니다. 이 만능 집게는 바이러스가 아무리 옷을 갈아입어도 절대 변하지 않는 핵심 부위만 골라서 잡습니다. 비유하자면 모든 문을 다 열 수 있는 마스터키를 가진 셈입니다.

더 중요한 점은 이 마스터키를 만드는 공장을 우리 몸속에 영구적으로 설치했다는 것입니다. 기존에는 항체만 따로 넣어줬기에 시간이 지나면 사라졌지만, 이번에는 LT-HSC(장기 혈액 줄기세포, 평생 동안 계속해서 새로운 피 세포를 만들어내는 뿌리 세포)를 조작했습니다. 이제 우리 몸은 외부에서 항체를 넣어줄 필요 없이, 스스로 평생 동안 만능 집게를 찍어내는 공장이 되었습니다.

바이러스 잡는 것 그 이상의 가능성

이 기술은 단순히 전염병을 막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몸속에서 특정 단백질이 부족해 생기는 병들을 고치는 데도 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피가 잘 멎지 않는 혈우병 환자에게는 피를 굳게 만드는 단백질이 부족합니다. 이때 혈액 줄기세포를 조작해 그 부족한 단백질을 계속 만들어내는 공장을 세워준다면 평생 치료가 가능해집니다.

연구팀은 인간의 혈액 줄기세포를 사용해 인간화 쥐(사람의 면역 세포가 자랄 수 있게 특별히 만들어진 쥐)에게 실험했을 때, 쥐보다 훨씬 더 높은 성공률을 보였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말라리아와 독감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실험했는데, 치명적인 독감 바이러스를 주입해도 이 공장을 가진 쥐들은 거의 모두 살아남았습니다. 이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우리 몸의 면역 체계를 완전히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결과입니다.

이제는 매년 주사를 맞거나 평생 약을 먹는 대신, 단 한 번의 주사로 몸속에 건강 공장을 세우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