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의 거인 SAP가 최근 독일의 AI 스타트업 Prior Labs를 인수하며 11억 6천만 달러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이번 인수는 단순히 기술을 사들이는 것을 넘어, 향후 4년간 Prior Labs를 정형 데이터(표와 데이터베이스처럼 구조화된 정보) 전문 AI 연구소로 키우겠다는 전략적 결정이다. 인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창업자들에게 수억 달러가 현금으로 지급된 성공적인 엑시트 사례로 평가받는다.

SAP의 정형 데이터 특화 전략과 Prior Labs 인수

SAP는 회계, 인사, 조달 등 기업의 핵심 업무를 처리하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며, 이 모든 데이터는 표 형태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Prior Labs는 설립된 지 18개월 된 신생 기업이지만, 표 기반 기초 모델(TFM, 표와 데이터베이스의 데이터를 분석해 예측하는 AI 모델)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이들의 대표 모델인 TabPFN은 오픈소스로 공개된 이후 300만 회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개발자들 사이에서 높은 활용도를 증명했다. SAP는 이번 인수를 통해 자사의 SAP AI Core(AI 모델을 배포하고 관리하는 플랫폼)와 SAP Business Data Cloud(기업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클라우드 서비스)에 이 기술을 직접 이식할 계획이다.

폐쇄적 생태계 전략과 NemoClaw의 허용

예전에는 기업들이 외부 AI 에이전트를 자유롭게 연결해 사용하곤 했지만, 이제 SAP는 자사가 승인한 아키텍처 외에는 외부 AI 에이전트의 접근을 엄격히 차단하고 있다. 이는 외부 에이전트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Salesforce(기업 고객 관리 소프트웨어 기업)의 전략과는 정반대되는 행보다. 현재 SAP가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기술은 자사의 Joule Agents(고객이 직접 AI 에이전트를 만들 수 있는 도구)와 Nvidia의 Agent Toolkit(에이전트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소프트웨어)을 기반으로 한 NemoClaw(Nvidia의 보안 중심 기업용 AI 에이전트)뿐이다. SAP는 자사 API 정책을 통해 이처럼 검증된 아키텍처를 사용하는 에이전트만 자사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도록 통제하고 있다.

기업 AI 시장의 새로운 경쟁 구도

개발자가 바로 체감하는 변화는 SAP 생태계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의 범위가 명확해졌다는 점이다. SAP는 Prior Labs를 독립적인 연구 단위로 유지하면서도, 자사의 방대한 비즈니스 데이터와 결합해 언어 이해와 추론 능력을 갖춘 차세대 정형 데이터용 AI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기존의 거대 언어 모델(LLM)이 해결하지 못했던 기업 내부의 복잡한 데이터 처리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시도다. SAP는 이미 Anthropic(대화형 AI 모델을 만드는 기업), Aleph Alpha(유럽의 AI 모델 개발사), Cohere(기업용 AI 플랫폼 기업) 등에 투자하며 기술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 왔으며, 이번 인수는 그 퍼즐의 마지막 조각인 정형 데이터 처리 능력을 완성하는 과정이다.

기업의 데이터가 저장된 곳에서 직접 답을 찾아내는 기술이 LLM의 화려한 말솜씨보다 더 강력한 비즈니스 무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