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상징에서 AI 인프라 기업으로의 전환

실리콘밸리 창업가들의 스타일을 상징했던 울 소재 신발 브랜드 올버즈(Allbirds)가 사업 모델을 완전히 전환했다. 올버즈는 지난 4월 기존 신발 사업 부문을 4,300만 달러에 매각하고 사명을 '스마트버드(Smartbird)'로 변경했다. 회사는 주식 시장에서 1억 달러의 자금을 추가로 조달하며 AI 인프라 제공업체로 재출범했다. 이러한 행보는 경영난을 겪는 상장사가 최신 트렌드에 편승해 주가를 부양하는 이른바 '밈 주식(Meme Stock) 플레이북'과 유사한 흐름으로 평가받았다.

사업의 정체성을 바꾸는 과정에서 올버즈는 공익법인(PBC, Public Benefit Corporation) 지위를 포기했다. PBC는 기업의 이익 창출뿐만 아니라 사회적·환경적 가치 실현을 정관에 명시해 법적 의무를 부여하는 법인 형태다. 올버즈는 신발 사업 운영 당시 PBC 지위를 활용해 지속 가능성 약속을 브랜드 피치(Pitch, 기업 가치 제안 메시지)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AI 인프라 기업으로 방향을 틀면서 과거의 환경적 가치 약속보다 사업적 실리에 집중하기 위해 해당 법적 지위를 폐기했다.

새롭게 취임한 나디아 칼스텐(Nadia Carlsten) CEO는 연봉 70만 달러와 약 900만 달러 가치의 주식을 부여받고 경영 전면에 나섰다. 공학 박사 학위를 보유한 칼스텐 CEO는 아마존 웹 서비스(AWS) 임원을 거쳐 유럽 컴퓨팅 기업 DCAI를 이끌었던 인프라 전문가다. 그녀는 취임 직후 암스테르담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인프라 운영 책임자를 포함한 새로운 리더십 팀 구축 작업에 착수했다. 이는 기존 신발 사업의 조직 구조를 완전히 정리하고 기술 중심의 실행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데이터 주권 중심의 관리형 배포 전략

스마트버드는 퍼블릭 클라우드의 무제한 확장성 대신 서버 직접 제어와 데이터 주권을 제공하는 관리형 배포 방식을 핵심 전략으로 채택했다.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이란 데이터가 수집된 국가나 기업이 해당 데이터에 대해 법적 통제권을 갖는 원칙을 의미한다. 스마트버드는 모델이 구동되는 서버에 대한 직접적인 제어권을 원하는 기업들을 타깃으로 설정했다. 이는 정치적 사유나 비즈니스 모델의 특성상 데이터의 물리적 위치와 접근 권한을 직접 관리해야 하는 특수 수요를 공략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방식은 칩 가격과 GPU 시간의 차익을 통해 수익을 내는 네오클라우드(Neocloud, 특정 목적이나 최신 하드웨어에 특화된 신흥 클라우드 기업)의 사업 모델과 차별화된다. 스마트버드는 대규모 GPU 숫자를 확보하는 확장 경쟁 대신, 수백 개에서 수천 개의 칩 규모로 구성된 클러스터의 민첩성과 인프라 스택의 제어권 확보에 집중한다. 칼스텐 CEO는 특정 워크플로우를 가진 기업들이 전용 서버를 사용할 때 더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스마트버드는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들이 24시간 칩 사용률을 최적화해 제공하는 저가형 컴퓨팅 서비스와 가격 경쟁을 하지 않는다. 대신 고객이 인프라 전체를 직접 통제함으로써 얻는 보안성과 효율성을 가치 제안의 핵심으로 삼았다. 이는 범용 클라우드의 표준화된 서비스에서 벗어나, 고객의 요구사항에 맞춘 고제어 인프라를 제공하여 틈새시장을 점유하려는 계산이다.

산업별 특수 수요와 고제어 인프라의 시장성

스마트버드는 제약, 금융, 에너지, 공공 부문 등 규제가 엄격하고 보안이 핵심인 산업군을 대상으로 소규모 고제어 AI 인프라의 시장성을 시험한다. 칼스텐 CEO는 과거 DCAI 재직 당시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 등 유럽 기업들과 협력하며 데이터 주권 및 맞춤형 모델에 대한 구체적인 수요를 확인했다. 스마트버드의 실질적인 경쟁 상대는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 대규모 데이터 센터와 컴퓨팅 자원을 보유한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가 아니라, 기업 내부에서 추진하는 자체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다.

이미 시장에는 유사한 성격의 관리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성 기업들이 존재한다. 휴렛 팩커드(Hewlett Packard)는 물리적 서버 자원을 단일 고객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싱글 테넌트(Single-tenant) 방식의 관리형 AI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데이터 센터 전문 기업인 에퀴닉스(Equinix) 또한 동일한 방식의 고제어 인프라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스마트버드는 이러한 기존 사업자들과 경쟁하며 데이터 통제권의 가치가 범용 서비스의 편의성을 압도하는 영역에서 생존 전략을 찾고 있다.

칼스텐 CEO는 올해 말까지 여러 고객사를 위한 컴퓨팅 클러스터 배포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최근 스텔스 모드에서 벗어나 3,000억 달러 규모의 칩 주문을 발표한 제너럴 컴퓨트(General Compute)와 같은 대규모 인프라 기업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다. 스마트버드는 거대한 칩 확보량보다는 특정 산업군의 니즈에 맞춘 민첩한 클러스터 운영 능력을 통해 사업적 실체를 증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