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지하철에 다시 등장한 '스크린 제로' 광고
뉴욕시 28번가 지하철역에 20년 전 제품인 'iPod Shuffle' 광고 포스터가 걸렸다. '스크린 타임 제로(zero screen time)'를 내세운 이 광고는 리퍼비시 테크 마켓플레이스인 백마켓(Back Market)이 집행했다. 구형 기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광고를 프리미엄 위치에 배치한 이유는 실제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성인의 약 53%가 스크린 타임을 줄이고 싶어 한다. 이러한 욕구는 구체적인 제품 채택으로 이어진다. 소셜 미디어와 스마트폰 환경에서 자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선 헤드폰, 레트로 게임기, CD 플레이어, 디지털 콤팩트 카메라 같은 '구식' 기기들이 다시 선택받고 있다. 이들은 인스타그램 스토리 업로드나 알고리즘 추천 같은 기능이 없는, 즉 주의력을 독점하려 하지 않는 경험을 찾는다.
하드웨어 시장의 수치에서도 변화가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서카나(Circana)에 따르면 미국 내 피트니스 트래커 지출은 전년 대비 88% 성장했다. 특히 오우라 링(Oura ring)이나 웁(Whoop) 손목밴드처럼 화면이 없는 '스크린리스' 웨어러블 기기가 주요 판매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 외에도 안드로이드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e-잉크 기기나 미니멀리즘 터치스크린 하드웨어인 라이트 폰(Light Phone)으로 기기를 완전히 교체하는 사용자층이 20~35세 사이에서 두텁게 형성되고 있다. 최근에는 독서 중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게 돕는 159달러 가격의 AI 북마크 '마크(Mark)' 같은 틈새 하드웨어도 등장했다.
'마찰 제거'에서 '경계 설정'으로의 채택 흐름
이번 현상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슬로우테크(Slowtech)'라는 새로운 채택 흐름으로 해석된다. 지금까지의 '패스트 테크'가 모든 사용자 경험에서 마찰(friction)을 제거해 편의성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했다면, 슬로우테크는 오히려 의도적인 마찰을 통해 사용자가 스스로의 경계를 설정하게 만든다.
사용자들은 모든 삶의 영역을 최적화해야 한다는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알고리즘이 결정하는 음악 추천이나 끊임없는 알림에서 벗어나, 제어권을 다시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다. 이는 기술 자체를 거부하는 '안티 테크'와는 결이 다르다. 디지털의 편리함은 유지하되, 항상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강박과 그로 인한 피로감만 걷어내려는 선택적 채택에 가깝다.
투자 및 개발 흐름 역시 이 지점으로 이동하고 있다. 과거 모바일 게임 시장의 개척자였던 오스틴 머레이(Austin Murray)는 이제 스크린 타임을 줄여주는 앱 '모카(MOQA)'를 개발하고 있다. 그는 현재의 과도한 스크린 타임 문제가 사용자의 의지력 부족이 아니라, 중독을 유도하도록 설계된 '제품 디자인의 문제'라고 분석한다. 즉, 시장의 경쟁 축이 '어떻게 더 오래 머물게 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건강하게 떠나게 할 것인가'로 일부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AI 실무자와 개발자가 주목할 지점
국내 AI 서비스 기획자와 하드웨어 개발자가 관찰해야 할 지점은 '기능의 과잉'이 오히려 사용자에게 진입 장벽이나 피로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웨어러블 기기나 AI 하드웨어를 설계할 때, 모든 정보를 화면으로 전달하려는 관성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먼저 주목할 부분은 '스크린리스 인터페이스'의 가능성이다. 오우라 링의 사례처럼 데이터 확인은 스마트폰으로 하되, 일상 속의 상호작용에서는 화면을 제거해 사용자의 주의력을 보호하는 방식이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또한, AI 북마크 '마크'처럼 특정 상황(예: 독서, 업무)에서 스마트폰으로의 이탈을 막아주는 '보조 도구' 형태의 하드웨어 접근법은 한국의 고밀도 학습·업무 환경에서도 충분한 소구력을 가질 수 있다.
다만, 라이트 폰의 사례에서 보듯 뱅킹, 호텔 체크인, 결제 등 스마트폰 기반의 사회적 인프라가 강한 환경에서는 완전한 기기 교체(Downgrade)보다는, 기존 스마트폰의 기능을 제어하거나 보완하는 '레이어' 형태의 솔루션이 더 현실적인 채택 경로가 될 것이다. 결국 사용자가 느끼는 '디지털 피로도'를 제품의 핵심 페인 포인트(Pain Point)로 설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의도적 불편함'을 어떻게 기능으로 구현할 것인지가 새로운 차별화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