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망에 직접 심은 AI 비서와 수직적 서비스 확장
이번 주말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Reliance Industries, 인도 최대 기업)가 주주총회에서 공개한 핵심은 통신망에 직접 심은 AI다. 가장 먼저 선보인 '지오 콜 에이전트(Jio Call Agent)'는 별도의 앱 설치 없이 통신 네트워크 수준에서 작동하는 AI 비서다. 사용자가 "헤이 지오(Hey Jio)"라고 부르면 활성화되며, 통화 내용을 실시간으로 전사하고 요약하는 것은 물론 택시 예약, 음식 주문, 예약 업무까지 수행한다. 릴라이언스 산하 통신사인 지오(Jio)의 사용자 5억 명 이상이 올해 말부터 이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
서비스의 확장 범위는 모바일 앱과 홈 디바이스로 이어진다. 자연어 요청만으로 eSIM 활성화나 로밍 요금제 선택이 가능한 AI 기반 '마이지오(MyJio)' 앱과, 날씨 알림 및 일정 관리를 선제적으로 제공하는 홈 디스플레이 '텔레프레임(TeleFrame)'을 함께 공개했다. 여기에 더해 의료(JioHealthIQ), 교육(JioLearnIQ), 농업(JioKrishiIQ), 소상공인(AI Vyapar) 등 특정 산업군에 특화된 수직적 AI 서비스 라인업도 구축했다. 이 모든 서비스는 22개 인도 언어를 지원하는 '릴라이언스 인텔리전스(Reliance Intelligence)' 체계 위에서 작동한다. 한편, 지오 플랫폼(Jio Platforms) 이사회는 최대 2억 7,000만 주의 신주 발행을 포함한 기업공개(IPO) 초안을 승인하며 시장 진출 준비를 마쳤다.
1,100억 달러 투자와 'AI 주권'을 향한 인프라 경쟁
단순한 서비스 출시를 넘어 1,100억 달러라는 구체적인 투자 금액이 인프라 구축에 투입된다. 릴라이언스는 구글, 메타(Meta), 엔비디아(Nvidia)와 파트너십을 맺고 인도 내 AI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메타와 협력해 구자라트주에 AI 데이터 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메타가 지오 플랫폼에 투자하고 기업용 AI 솔루션을 개발하기 위해 합작 법인을 세운 흐름의 연장선이다.
이러한 공격적인 투자의 배경에는 외산 모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전략적 판단이 있다. 최근 앤스로픽(Anthropic, 미국 AI 스타트업)의 최신 모델 접근 권한이 제한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해외 기업의 결정이 인도 내 AI 비즈니스에 직접적인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릴라이언스는 이를 '공급망 리스크'로 규정하고, 외부 모델을 빌려 쓰는 방식이 아니라 자체적인 스택(Stack)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현재 인도 시장에서는 타타 컨설턴시 서비스(TCS), 인포시스(Infosys), 아다니 그룹(Adani Group) 같은 대기업들이 구글, 오픈AI(OpenAI) 등과 손잡고 유사한 AI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네이티브 통합 전략이 바꾸는 AI 채택 경로
실무자가 주목할 지점은 AI를 별도 앱이 아닌 통신망(Network) 수준에서 구현했다는 점이다. 기존 AI 서비스들이 사용자가 앱을 다운로드하고 실행해야 하는 '선택적 도구'였다면, 지오의 방식은 전화라는 기본 기능에 AI를 내장해 '네이티브 기능'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사용자가 제3자 AI 앱으로 이탈하는 것을 막는 강력한 유통 우위를 제공하며, AI 채택의 진입장벽을 극단적으로 낮추는 전략이다.
다만, 통화 내용과 홈 디바이스 데이터가 AI 모델 학습에 사용되는지에 대한 불투명성은 리스크로 남는다. 릴라이언스는 사용자 동의하에 서비스가 운영된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데이터 공유 및 학습 활용 범위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한국의 AI 기업이나 개발자들에게는 거대 자본을 가진 플랫폼 사업자가 인프라(데이터 센터)와 유통망(통신사)을 동시에 쥐었을 때, AI 서비스의 채택 속도가 얼마나 빨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특정 국가의 규제나 정책 변화가 AI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체 인프라를 확보하는 '소버린 AI(Sovereign AI)' 흐름이 실제 서비스 단계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