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부 밖으로 밀려난 1.65조 달러의 AI 비용

장부상에 드러나지 않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숨은 부채' 규모가 4년 만에 8배로 급증해 1.65조 달러에 이르렀다. 니케이(Nikkei)의 분석에 따르면 이 금액은 재무제표에 공식 기록된 부채 1.35조 달러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부채는 주로 그래픽 처리 장치(GPU)와 서버의 장기 구매 계약, 데이터 센터 운영사와의 리스 계약 형태로 존재한다. 회계 규칙상 정당한 관행이며 분기별 재무제표 주석에 공개되지만, 대차대조표에는 즉각 반영되지 않는 구조다.

오프밸런스(Off-balance sheet) 거래 규모를 1.2조 달러로 추산한 무디스(Moody's)는 이 중 8,200억 달러가 아직 건설 중인 데이터 센터와 연결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향후 기업들이 막대한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는 '부채 등가 부채(debt-equivalent liabilities)'로 작용하게 된다. 동시에 가시적인 채권 시장의 움직임도 가파르다. S&P 글로벌에 따르면 하이퍼스케일러와 엔비디아(Nvidia) 같은 관련 기업들이 올해 상반기에만 발행한 채권은 2,250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973.7% 폭증했다. 이 추세라면 올해 전체 발행액은 4,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자산 경량'에서 '자산 중량' 모델로의 강제 전환

소프트웨어와 지식재산권, 확장 가능한 클라우드 서비스 중심의 '자산 경량(Asset-light)' 구조였던 빅테크의 사업 모델이 하드웨어 중심의 '자산 중량(Asset-heavy)' 모델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무디스는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전례 없는 수준의 투자와 자본 조달이 이러한 모델 전환을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적은 자본 투자로도 성장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물리적인 데이터 센터와 칩 확보를 위해 막대한 부채를 끌어써야 하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자본 조달 환경은 점차 까다로워지는 추세다. 미국 재무부의 이번 회계연도 예산 적자가 2조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채 투자자와 기업 채권 투자자 사이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연방준비제도(Fed)가 국채의 주요 구매자 역할을 하지 않게 되면서 모든 부담이 민간 투자자에게 전가되는 상황이다. 캐피털 이코노믹스(Capital Economics)는 상반기의 부채 증가 추세가 하반기에도 이어진다면, GDP 대비 기업 및 정부 채권 발행 비중이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본 흐름의 병목과 프리미엄 상승 신호

민간 투자자들이 체감하는 리스크는 이미 채권 금리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S&P 글로벌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이 무위험 채권 수익률 대비 더 높은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시장의 피로감을 경고했다. 과거에 강력하고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가졌던 발행사들이 빠르게 레버리지를 높이는 모습에 투자자들이 경계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한국의 AI 실무자와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지점은 자본 조달 비용의 상승이 인프라 도입 시점과 규모에 미치는 영향이다. 무디스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재무제표가 여전히 견고하며 투자 등급의 즉각적인 위험은 없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RSM의 조셉 브루수엘라스(Joseph Brusuelas)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했듯, 정부와 민간의 부채 발행이 동시에 쏟아지면 결국 대출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는 AI 인프라 구축 비용의 상승으로 직결되며, 무제한적으로 공급되던 자본의 흐름이 둔화되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결국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자본 조달 비용 상승은 그들이 제공하는 클라우드 서비스 가격이나 AI 솔루션의 도입 비용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