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비자 60%가 느끼는 'AI'라는 단어의 거부감

이번 조사에서 가장 먼저 확인된 사실은 소비자들이 브랜드가 내세우는 'AI'라는 키워드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Automattic(오토매틱)이 운영하는 기업용 퍼블리싱 플랫폼 WordPress VIP(워드프레스 VIP)가 지난 4월 미국 성인 1,200명과 기업 의사결정권자 및 CMO(최고마케팅책임자) 800명 등 총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미국 소비자의 60%는 브랜드 메시지에 'AI'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을 때 거부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AI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도 깊다. 응답자의 86%는 AI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으며, 여전히 원본 소스를 직접 탐색하기를 원했다. 특히 출처 표기가 명확하지 않은 AI 생성 답변에 대해서는 42%의 소비자가 항공사 수수료, 복잡한 개인정보 보호정책, 의료비 청구서보다 더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해 충격을 주었다.

인터넷 환경 전반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으로 변했다. 응답자 4명 중 3명은 현재의 인터넷이 10년 전보다 '덜 인간적(less human)'이라고 느낀다. 이는 브랜드들이 AI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려 할수록, 정작 사용자는 인간이 작성한 콘텐츠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AI 가시성 확보와 인간적 신뢰 사이의 충돌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이러한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AI 검색 엔진에 노출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업 응답자의 60%는 지난 1년간 AI 검색 엔진과 답변 플랫폼을 통해 유입되는 트래픽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기업 의사결정권자의 74%는 AI에 의한 발견 가능성(discoverability)과 출처 표기(attribution)를 주요 우선순위로 꼽았다.

이 지점에서 브랜드는 두 가지 상충하는 흐름을 동시에 타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하나는 AI 에이전트가 읽기 좋은 구조로 웹사이트를 구축해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AI 답변을 넘어 실제 사이트를 클릭해 들어온 소수의 사용자에게 '인간적인 신뢰'를 주어 재방문을 유도하는 것이다. WordPress VIP의 CTO 브라이언 알베이(Brian Alvey)는 과거에는 사람을 위해 웹사이트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사람을 대신해 행동하는 AI 에이전트를 위해 웹사이트를 구축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흐름은 콘텐츠의 개방성과도 연결된다. 응답자의 80%는 웹상의 정보가 소수의 거대 조직에 의해 통제되기보다 공개적으로 접근 가능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는 Automattic이 ActivityPub(액티비티펍, 분산형 소셜 네트워크 프로토콜) 같은 오픈 웹 프로토콜에 투자하고 오픈 소스 워드프레스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전략적 방향과 궤를 같이한다.

AI 시대의 신뢰 지표: '출처 클릭'의 가치

한국의 AI 실무자와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지점은 소비자가 신뢰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기준의 변화다. 이번 조사에서 소비자의 33%는 원본 소스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클릭하는 행위를 가장 강력한 신뢰 신호로 꼽았다. 이는 AI가 제공하는 요약 답변이 편리함을 줄 수는 있지만, 최종적인 신뢰는 결국 '검증 가능한 원본'에서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업의 AI 도입 전략은 단순히 '우리 서비스에 AI가 적용되었다'는 점을 홍보하는 방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AI 검색 엔진이 우리 콘텐츠를 정확하게 인용하게 만들고, 그 인용을 통해 유입된 사용자가 원본 콘텐츠에서 충분한 인간적 신뢰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더 실질적인 선택지가 된다.

결국 시장 참여자들에게 남은 과제는 AI 에이전트에게는 '읽기 쉬운 데이터'를 제공하면서, 인간 사용자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로서의 권위를 유지하는 이중 구조를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있다. AI 가시성을 높이는 기술적 최적화와 인간적 신뢰를 주는 콘텐츠 전략이 분리되지 않고 동시에 작동해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