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결과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혈액 검사 수치 하나가 내 미래의 기억력을 예고하고 있다면 어떨까. 평소처럼 염증 수치를 확인하러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가 이 수치를 근거로 수년 뒤 치매 위험이 높다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증상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피 한 방울로 뇌의 미래를 읽어내는 일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40만 명의 데이터가 증명한 NLR 수치와 치매의 상관관계

NYU 랭곤 헬스(뉴욕대학교 의료원) 연구팀은 4월 3일 알츠하이머 및 치매(Alzheimer's & Dementia) 학술지를 통해 NLR(호중구와 림프구의 비율) 수치가 치매 위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팀은 NYU 랭곤 병원 4곳의 환자 28만 5천 명과 보훈처(Veteran's Health Administration)의 환자 8만 5천 명 등 총 40만 명에 가까운 대규모 데이터를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55세 이상이며 알츠하이머나 치매 진단을 받기 전의 초기 NLR 측정값을 기준으로 삼았다.

NLR은 혈액 속의 Neutrophils(호중구, 감염과 염증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백혈구)와 Lymphocytes(림프구, 면역 반응을 조절하고 기억하는 백혈구)의 비율을 계산한 값이다. 이는 일반적인 전체 혈구 계산법(Complete Blood Count)을 통해 쉽게 얻을 수 있는 표준 실험실 수치다. 연구 결과 NLR 수치가 중앙값보다 높은 집단은 알츠하이머를 포함한 치매 발병 확률이 일관되게 높게 나타났다. 특히 히스패닉 계열 환자와 여성 집단에서 NLR 상승과 치매 위험 사이의 연관성이 더 강하게 관찰되었다.

이 연구는 국립보건원(NIH)의 여러 보조금(R01AG092953, R01AG070821 등)과 알츠하이머 협회, 브라이트포커스 재단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다. 현재 연구팀은 VIDA lab(혈관 및 면역 기능 장애 연구실)에서 PET(양전자 단층 촬영, 뇌의 대사 활동을 시각화하는 정밀 영상 검사)와 diffusion MRI(확산 강조 자기공명영상, 물 분자의 움직임을 통해 뇌 조직의 미세 구조를 보는 검사)를 결합해 호중구가 실제로 인지 기능 저하를 일으키는지 추적 조사하고 있다.

면역 세포의 불균형이 뇌 조직을 파괴하는 메커니즘

그렇다면 단순한 혈액 수치가 어떻게 뇌의 퇴행성 질환을 예측하는 것일까. 쉽게 말하면 NLR은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얼마나 과열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비유하자면 호중구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출동하는 소방차와 같다. 적당한 수의 소방차는 불을 끄고 조직을 복구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불이 나지 않은 곳에 소방차가 너무 많이 몰려 있으면 오히려 도로가 마비되고 주변 건물들이 파손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우리 몸에서도 마찬가지다. 호중구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혈관과 뇌 조직에 염증을 일으켜 손상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는 호중구로 인한 염증 징후가 발견되었으며, 동물 실험에서는 이 세포들이 질병의 진행을 가속화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낡은 호중구를 제거하는 능력이 떨어지면 뇌 조직의 손상은 더욱 심해진다.

이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기존의 치매 진단 방식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기억력 감퇴 같은 인지 기능 저하가 나타난 뒤에야 검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NLR 수치는 인지 능력이 떨어지기 훨씬 전부터 상승한다. 물론 NLR 수치 하나만으로 치매를 확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다른 위험 요인과 결합한다면, 어떤 사람이 더 정밀한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가려내는 게이트웨이(진입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연구팀은 호중구의 수명이 매우 짧아 신선한 혈액 샘플로만 연구해야 한다는 기술적 한계를 지적했다. 현재는 호중구가 단순히 치매의 징후를 보여주는 표식인지, 아니면 직접적으로 병을 일으키는 원인인지 규명하는 단계에 있다. 만약 호중구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밝혀진다면, 이 세포의 활동을 조절하는 것이 새로운 치매 치료법의 핵심 타겟이 될 수 있다.

이제 혈액 속 면역 세포의 균형이 뇌 건강을 읽어내는 가장 빠르고 저렴한 창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