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의 쥐는 생후 수년이 지나면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급격히 변화하며, 이는 곧 염증 반응 증가와 유익한 대사 산물의 감소로 이어진다. 반면 벌거숭이두더지쥐(Heterocephalus glaber, 지하에서 군집 생활을 하며 40년 이상 생존하는 설치류)는 이러한 노화의 징후를 거의 보이지 않는다. 최근 발표된 연구는 이 동물의 장내 미생물 구성이 수명 전반에 걸쳐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추적했다.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장내 미생물 데이터 분석

연구진은 다양한 사회적 계급과 30년 이상의 연령대를 아우르는 벌거숭이두더지쥐의 분변 샘플을 분석했다. 대조군으로 사용된 C57BL6/J(노화 연구에 흔히 쓰이는 실험용 생쥐) 그룹이 연령에 따라 장내 미생물 구성에서 광범위한 변화를 보인 것과 달리,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연령대별 차이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장내에만 존재하는 고세균인 메타노마실리코커스 인테스티날리스(Methanomassiliicoccus intestinalis, 장내에서 메탄을 생성하는 미생물의 일종)만이 고령 개체에서 비율이 다소 증가했다. 또한 번식 능력을 갖춘 여왕 개체는 공격적인 식분증(자기 분변을 먹는 행위)으로 인해 더 높은 미생물 다양성을 보였다.

노화 기전의 차이와 면역 체계의 역할

예전에는 장내 미생물 변화가 노화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었으나, 이번 결과는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벌거숭이두더지쥐가 노화에 따른 미생물 변화를 겪지 않는다는 사실은, 일반적인 포유류에서 나타나는 미생물 불균형이 사실은 면역 체계의 노화로 인해 유해 미생물을 억제하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이차적인 현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벌거숭이두더지쥐는 면역 체계가 노화하지 않기에 장내 미생물 생태계 또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구조다.

연구팀이 공개한 이번 분석 결과는 arXiv 논문을 통해 상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장내 미생물은 소화, 대사 조절, 면역 기능에 관여하며 심혈관 질환이나 당뇨병 등 노인성 질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벌거숭이두더지쥐가 보여주는 이러한 생물학적 안정성은 노화에 따른 기능 저하를 지연하거나 방지하는 기전을 이해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다.

결국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장내 미생물 항상성은 노화가 필연적인 퇴행 과정이 아니라, 특정 종에서는 생물학적으로 충분히 제어 가능한 변수임을 증명한다.